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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생소한 단어

'해하다'는 낯설다

by 김세중

금융지주회사법이란 법아 있다. 2000년 12월 23일 제정되었다. 21세기에 만들어진 법인데도 법조문에는 낡은 티가 물씬 나는 단어가 들어 있다. '건정성을 크게 해할', '이익을 크게 해할'과 같은 말은 요즘 말 같지가 않고 1950년대나 1960년대의 말 같은 느낌이 난다. 비록 국어사전에 올라 있기는 하지만 거의 '사어'가 된 말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제50조(건전경영의 지도)

③ 금융위원회는 금융지주회사가 제2항에 따른 경영지도기준을 준수하지 아니하는 등 경영의 건전성을 크게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경영개선계획의 제출, 자본금의 증액, 이익배당의 제한, 자회사 주식의 처분, 상각형 조건부자본증권 또는 전환형 조건부자본증권의 발행ㆍ보유 등 경영개선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


제57조(행정처분)

②금융위원회는 금융지주회사등이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당해 금융지주회사등에 대하여 6월 이내의 영업의 전부정지 또는 그 자회사등의 주식의 처분을 명하거나 당해 금융지주회사의 인가를 취소할 수 있다. <개정 2002. 4. 27., 2008. 2. 29., 2015. 7. 31.>

1. 허위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제3조의 인가를 받은 경우

2. 제1항제2호의 규정에 의한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

3. 제1항제5호의 영업의 정지기간중에 그 영업을 한 경우

4. 제1호 내지 제3호외의 경우로서 이 법 또는 이 법에 의한 명령이나 처분에 위반하여 자회사등의 예금자 또는 투자자의 이익을 크게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그런데 같은 법 제34조 제10항에는 '경영건전성을 현저히 해칠'이란 말이 나온다.


제34조(대주주와의 거래 등의 제한 등)

⑩ 금융위원회는 비은행지주회사의 대주주(회사에 한한다)의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거나 채무상환능력이 현저히 약화되는 등 재무구조의 부실로 인하여 비은행지주회사등의 경영건전성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그 비은행지주회사등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조치를 할 수 있다.

1. 대주주에 대한 신규 신용공여의 금지

2. 대주주가 발행한 증권(「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른 증권을 말한다. 이하 같다)의 신규 취득 금지

3. 그 밖에 대주주에 대한 자금지원 성격의 거래제한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치


왜 어떤 조에서는 '건전성을 해할'이라 하고 다른 조에서는 '건전성을 해칠'이라 하는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없다고 본다. '해하다'나 '해치다'나 모두 '손상을 입히다'라는 뜻이다. 같은 뜻이라면 같은 단어를 쓰는 게 낫고 당연히 요즘 쓰이고 있는 말을 써야 할 것이다. 법조문은 안 그래도 딱딱한데 단어 자체가 낯설고 생소한 게 들어 있으면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또 지적할 게 있다. 이 법의 제24조에는 '보험계약자 보호와 과도한 지배력 확장을 방지하기 위하여'라는 표현이 나온다.


제24조(자회사등의 편입승인 등) 보험지주회사가 새로이 자회사등을 편입하는 경우에는 제17조에도 불구하고 같은 조 제1항의 승인요건 중 보험계약자 보호와 과도한 지배력 확장을 방지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을 갖추어야 한다.


이 표현은 '보험계약자 보호를 방지하기 위하여'와 '과도한 지배력 확장을 방지하기 위하여'가 접속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엄연히 문면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과연 이런 뜻으로 작성된 표현인지 강한 의심이 든다. '보험계약자를 보호하기 위하여'와 '과도한 지배력 확장을 방지하기 위하여'가 접속된 게 아닌가 싶다. 만일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씌었어야 한다.


제24조(자회사등의 편입승인 등) 보험지주회사가 새로이 자회사등을 편입하는 경우에는 제17조에도 불구하고 같은 조 제1항의 승인요건 중 보험계약자를 보호하고 과도한 지배력 확장을 방지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을 갖추어야 한다.


제24조(자회사등의 편입승인 등) 보험지주회사가 새로이 자회사등을 편입하는 경우에는 제17조에도 불구하고 같은 조 제1항의 승인요건 중 보험계약자 보호와 과도한 지배력 확장 방지를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을 갖추어야 한다.


문법을 지키지 않은 말은 무슨 뜻인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문면 그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속뜻을 헤아리게 만드는 수고를 끼친다. 법조문이 그래서는 안 된다. 명명백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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