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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17. 2024

'부합하다'는 형용사인가

동사의 부정은 '~지 않는다'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률이란 법률이 있다. 약칭 농촌공간재구조화법이다. 이 법은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으로 2023년에 제정되었다. 이 법은 농촌의 난개발과 지역소멸 위기 등에 대응하여 농촌공간의 재구조화와 재생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삶터ㆍ일터ㆍ쉼터로서의 농촌다움을 회복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법의 취지는 좋다. 그런데 보칙에 속하는 제38조 제2항에 문법적으로 의문스러운 표현이 있어 눈길을 끈다. 제38조 제2항은 다음과 같다.


제38조(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 계획의 수립ㆍ운영에 대한 감독 및 조정) 

②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은 기본계획 또는 시행계획이 기본방침의 취지에 부합하지 아니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시장ㆍ군수 또는 특별자치시장에게 기한을 정하여 조정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시장ㆍ군수 또는 특별자치시장은 기본계획 또는 시행계획을 조정하여야 한다.


제2항에 있는 '기본방침의 취지에 부합하지 아니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이 의문을 자아낸다. '부합하다'는 의미상으로는 형용사처럼 느껴진다. '적합하다'와 비슷한 의미인 듯이 보인다. 그리고 '적합하다'는 형용사가 맞다. 그러나 '부합하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부합-하다2(符合하다)

발음[부ː하파다]

「동사」

【…에】【 …과】

부신(符信)이 꼭 들어맞듯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다. 

정치 개혁에 부합하는 인물.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보다 큰 목적과 공동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는 행사가 되길 바라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이청준, 춤추는 사제≫


명백하게 '부합하다'는 동사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용례에 동사답게 '부합하'이라고 되어 있다. 만일 형용사라면 '부합하'이 아니라 '부합한'이어야 할 것이다. '부합하다'의 뜻풀이에 나오는 '들어맞다' 역시 동사이지 형용사가 아니다. '딱 들어맞 말'이지 '딱 들어맞 말'이 아니다.


'부합하다'가 동사이므로 '부합한다'의 부정은 '부합하지 않'이지 '부합하지 않다'가 아니다. 그런데 위 법률 제38조 제2항에는 '부합하지 아니하다고'라고 했다. '부합하지 아니하다고'는 '부합하다'가 형용사일 때의 부정이다. '부합하다'가 동사인 만큼 부정은 '부합하지 않다고' 즉 '부합하지 아니다고'라야 한다. 


농촌공간재구조화법의 제38조 제2항에 나오는 '부합하지 아니다고'는 '부합하다'가 형용사로 느껴지기 때문에 그에 이끌려 나타난 표현으로 문법적 오류이다. '부합하지 아니다고'라야 한다. '아니하다고'를 쓰려면 '부합하지' 대신에 '적합하지'와 같은 형용사를 써야 한다. 형용사, 동사 용법을 다 가지고 있는 '맞다'를 써도 괜찮다. 그러나 '부합하다'는 안 된다. 법조문은 정확하고 엄밀해야 한다. 그리고 문법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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