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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26. 2024

공소시효는 완성한다?

일본어와 한국어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민법에 '시효가 완성한다'라는 표현이 다수 등장한다. 민법 제162조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가 대표적이다. 사실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한다."라고 하면 간단한데 '소멸시효가 완성'라는 기괴한 표현이 쓰이고 있다. 최소한 '소멸시효가 완성'라 해야 문법에 맞다.


그런데 '시효가 완성한다'는 민법에만 있지 않다. 형사소송법에도 있다.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형사소송법

제249조(공소시효의 기간) 

공소시효는 다음 기간의 경과로 완성한다. <개정 1973. 1. 25., 2007. 12. 21.>

1.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에는 25년

......


이 조의 문장은 형사소송법이 제정되던 1954년에도 같았다. 


第249條(公訴時效의 期間) 公訴時效는 다음 期間의 經過로 完成한다.

1. 死刑에 該當하는 犯罪에는 15年

......


표현은 같고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가 제정 당시에는 15년이었는데 지금은 25년으로 늘어났을 뿐이다. 문제는 '시효는 완성한다'가 과연 올바른 한국어 문장인가 하는 것이다. '완성하다'는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타동사인데 목적어가 없는데도 '완성한다'고 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이상한 표현이 형사소송법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답은 일본 형사소송법에 있어 보인다. 일본 형사소송법 제250조는 다음과 같다.


第二百五十条 時効は、人を死亡させた罪であつて禁錮以上の刑に当たるもの(死刑に当たるものを除く。)については、次に掲げる期間を経過することによつて完成する

 無期の懲役又は禁錮に当たる罪については三十年


즉 일본 형사소송법에 '時効は、...... 完成する'라 되어 있고 '完成する'가 '완성하다'이니 '완성한다'로 옮긴 것이다. 일본어에서 '完成する'는 목적어 없이도 쓰일 수 있다 한다. 그러나 한국어의 '완성하다'는 목적어 없이는 쓰이지 못한다. 일본어와 한국어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完成する'라 되어 있으니 '완성한다'로 옮겼겠지만 중대한 오역이었다. '완성된다'라 했어야 했다.


'시효가 완성한다'와 같은 국어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형사소송법에 들어온 지 올해로 70년이 되었고 민법에 쓰인 지도 66년이 지났다. 아직도 그대로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고 살다가 이제는 독립해서 어느새 일본 못지않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아직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일본의 지배 잔재가 남아 있다. 국가 질서를 유지하는 뼈대인 법률 조문에 일본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서 걷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부끄럽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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