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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ug 04. 2024

머내를 찾아서

의왕에서 바라재 넘어 동천동까지

더위가 절정에 이르렀다. 찌는 듯한 폭염은 감당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시내버스, 지하철로 피신할 수도 있지만 거긴 또 너무 추워서 오래 못 있는다. 자칫 냉방병에 걸릴 수 있다. 이때 가장 좋은 것이 산림욕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더운 때라도 해발 300m 넘는 산에 들어가면 더위를 잊는다. 서늘한 바람을 느끼며 산림욕을 즐길 수 있다. 서울 가까운 데에 그런 산림욕하기 딱 좋은 곳으로 난 주저 없이 바라산산림욕장을 든다. 그래서 최근에 벌써 여러 번 그곳을 다녀왔다. 산속에 참으로 얼기설기 많은 산책로가 나 있다. 한두 번 가서는 다 가보지 못한다.


그렇게 바라산산림욕장에 푹 빠져 있는데 최근에 지인으로부터 귀한 책을 선물받았다. <<머내여지도>>라는 책으로 그 책은 바로 바라산 아래 머내 즉 고기동, 동천동의 역사와 지리를 오롯이 기록해두었다. 눈이 번쩍 뜨여 단숨에 다 읽어 내려갔다. 책이 다루고 있는 지역을 대충은 파악하고 있었으니 어찌 재미있지 않으리요. 그동안은 그냥 멋모르고 참 특이한 데구나 하고 있었는데 <<머내여지도>>는 이 동네에 깃들어 있는 마치 단층 같이 켜켜이 쌓인 여러 시기의 모습에 대해 기록하고 추론, 서술했다.


원래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부산 동래까지 가는 길은 동천동을 지났다 한다. 사람들은 늘 남쪽에서 이곳을 지나 한양으로 가거나 거꾸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1900년대 초기에 경부선 철도가 안양-수원으로 지나면서 갑자기 이 지역은 소외되었다. 사람과 물자가 주로 철도를 이용해 이동하고 운반됐으니까. 그러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다시 이곳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한다. 그리고 조용하던 농촌마을로 가구공장이 물밀듯 밀어닥쳐서 거대한 가구단지가 생겼고... 커다란 카세트테이프공장도 생겼다. 전기도 들어왔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 이들 공장들은 땅이 더 싼 데로 옮겨갔다. 그리고 이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분당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분당에서 가까운 이곳도 가만 있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엄청난 아파트 단저가 들어섰다.


당연히 인구도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늘어났다. 아파트 주민 대부분이 외지인이 아닐까. 원래 이곳에 살던 주민들도 섞여서 살고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경치 좋고 공기 맑은 광교산, 백운산, 바라산 아래 계곡을 따라 음식점과 카페 등이 착착 들어섰다. 발 디딜 수 없을 만큼 많이. 그 많은 업소들이 치열하게 동천동, 고기동에서 지금 경쟁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으니 그렇게 많은 식당, 카페 등등이 생기리라.


8월 4일 가장 더운 날 바라산산림욕장을 지나 바라재를 넘어 터덜터덜 동천동 방향으로 하염 없이 걸어 내려왔다. 길고 긴 골이었지만 끝은 있었다. 길을 걷다가 책에서 본 지명이 나타났다. 고기교회다. 저절로 발걸음은 교회 안으로 향했다. 참 아늑했다. 갑자기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어른들도 나 같은 처음 보는 외지인에게 목례로 인사한다. 교회는 작았지만 정겨워 보였다. 그 옆은 책에서 본 밤토실어린이작은도서관이었다. 어린이들이 분주히 드나들고 있었다. 이따금 어른도... 궁금했다. 근처엔 온통 식당이고 주택은 잘 보이지 않던데 이 어린이들은 어디서 왔을까 하는 것이다. 멀리서 걸어서 왔거나 버스를 타고 왔을지도 모르겠다. 고기동이 놀랄 만큼 상업화되어 왔고 지금도 그렇지만 아직도 마을 공동체는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서 1~2km쯤 더 내려가서 미리 점찍어 둔 식당을 찾아갔다. 이리식당이다. <<머내여지도>>에 따르면 1977년에 문을 연 식당이란다. 머내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인 것이다. 어언 47년이나 되었다. 식당 안에 들어서니 과연 그런 연륜과 딱 어울리는 정경이 펼쳐졌다. 2시가 넘었기에 손님은 별로 없었는데 할아버지 한 분과 할머니 두세 분이 일하고 계셨다. 딱 봐도 모두 70대가 넘으셨다. 이분들이 다 1977년부터 일하셨을까. 그건 아닐지도 모른다. 한두 분은 나중에 참여했을 수도. 그런데 벽 한쪽 구석에 어떤 한 남자 노인이 우두커니 앉아 있음을 곧 알아챘다. 식당 손님도 아니고 종업원도 아닌 그저 아는 사람이 그냥 거기서 지내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건 내실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두 수녀님이었다. 나는 그렇게 나이 든 할머니 수녀님을 본 게 오늘이 처음 같다. 늘 깔끔하고 단정한 수녀님만 보았지 그렇게 노령의 수녀님을 본 적이 있었던가. 아마 근처에 수녀원이 있는 모양이었다. 요컨대 이 노포식당은 원주민식당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주인과 종업원이 모두 70대 이상이고 손님 또한 오래 이곳을 출입한 동네 분들 같았으니 말이다. 나야 책을 읽고 처음 찾아온 뜨내기였지만...


식당을 나와 근처 동천자이아파트도 지나고 <<머내여지도>>에서 보았던 목양교회, 성심원, 동천성당도 지났다. 동천센트럴자이는 하늘을 찌를듯 높았다. 동문굿모닝힐3차, 래미안이스트팰리, 동문디이스트, 동문굿모닝힐6차 등 참으로 많은 아파트들이 들어차 있었다. 그 사이로 간간이 옛날에 지어진 상가들이 어지럽게 자리하고 있었고... 책에서 보았던 중앙약국과 농협사거리는 끝내 찾지 못했다. 그리고 동천역에 와서 찌는 듯이 더웠던 8월 4일의 머내 탐방을 마무리하였다.


한가지 소망을 해보았다. <<머내여지도>>라는 책이 나와서 이 지역의 오늘이 있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기록될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지만 아예 자그마한 마을박물관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꽤나 흥미진진한 기록이 모일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을 거쳐 간 여러 시기 사람들 본인이나 후손들이 자료를 기증한다면 아주 근사한 박물관이 탄생하지 않을까. 아파트공화국으로 돼 가는 게 대세인 이 마당에 고기교회와 밤토실도서관 같은 마을공동체가 살아 움직인다는 게 여간 신기하지 않다. 머내에서 희망을 본다.



바라산 아래 바라재(붓골재)에 이정표가 있다
바라산
바라산 아래 폐건물이 있다
고기동에 논이 있다
고기동 계곡
고기교회
밤토실도서관
고기교회
오른쪽 붉은 지붕이 밤토실도서관
고기교회 입구


교회뿐 아니라 여러 건물이 어울려 있다
14번 버스가 미금역과 고기동을 부지런히 오간다


저기 보이는 데가 대장동이다
갑자기 호젓해졌다
낙생저수지
덕양군은 중종의 5남인데 이순제는 그의 8대손이라고...
이리식당은 1977년에 문을 연 노포식당이다
어르신들이 운영하신다
목양교회
센트럴자이아파트
성심원 입구
성심원
현대식 고층 자이아파트
동천동성당
손곡4교
14.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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