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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ug 07. 2024

'좇다'를 쓰려면 바르게 쓰든가

'좇다'보다는 '따르다'가 더 어울린다

민법은 사람들 사이의 행위나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신의'를 들고 있다. 그래서 민법 제2조 제1항에 신의칙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를 담은 문장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는 보기 딱한 비문이다. '신의에 좇아'가 일본 민법의 '信義に従い'를 엉터리로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의를 지켜'나 '신의에 따라'가 한국어답고 굳이 '좇아'를 쓰고자 한다면 '신의를 좇아'라야 한다. 


'좇다'는 타동사기 때문에 목적어에는 '을/를' 조사가 와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조문은 민법에 또 있다. 민법 제39조 제1항은 다음과 같다.


민법

제39조(영리법인) ①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단은 상사회사설립의 조건에 좇아 이를 법인으로 할 수 있다.


'조건 좇아'는 최소한 '조건 좇아'라 해야 문법에 맞다. 그러나 더 문맥에 잘 맞는 표현은 '조건에 따라'이다. 그게 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이다. 잘못된 '~에 좇아'는 민법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다음과 같은 조문들이 그런 예다.


민법

제203조(점유자의 상환청구권) 

②점유자가 점유물을 개량하기 위하여 지출한 금액 기타 유익비에 관하여는 그 가액의 증가가 현존한 경우에 한하여 회복자의 선택에 좇아 그 지출금액이나 증가액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


제303조(전세권의 내용) ①전세권자는 전세금을 지급하고 타인의 부동산을 점유하여 그 부동산의 용도에 좇아 사용ㆍ수익하며, 그 부동산 전부에 대하여 후순위권리자 기타 채권자보다 전세금의 우선변제를 받을 권리가 있다. <개정 1984. 4. 10.>


제390조(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없이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선택에 좇아', '용도에 좇아', '내용에 좇은'이 모두 이상하지 않은가. 이들은 모두 '선택을 좇아', '용도를 좇아', '내용을 좇은'이라야 조사를 바로 쓴 게 된다. 나아가 아예 동사를 '좇다'보다는 '따르다'를 쓰는 게 더 일상언어에 가깝고 그렇게 할 때 누구나 편하게 해당 조문을 이해할 수 있다. 자연스럽지 않은 동사('좇다')와 아예 틀린 조사('')를 쓰는 바람에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법조문이 더욱 어려워졌다. 


틀린 조사가 사용된 이유가 뭘까. 이미 제2조 제1항의 '신의에 좇아'가 일본 민법의 '信義に従い'를 잘못 번역한 것임을 보았지만 민법 제390조의 '내용에 좇은' 역시 일본 민법을 무비판적으로 옮겼음을 다음에서 알 수 있다.


일본 민법

第四百十五条 債務者がその債務の本旨に従った履行をしないとき又は債務の履行が不能であるときは、債権者は、これによって生じた損害の賠償を請求することができる。


즉 일본 민법 해당 조항의 '本旨に従った'가 '내용에 좇은'으로 옮겨진 것이다. 달라진 거라고는 '本旨'를 '내용'이라 한 것인데 '本旨'는 취지라는 뜻으로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일본어 ''를 ''로, 'った'를 '좇은'이라 옮긴 것이다. '내용에 좇은'이 얼마나 이상하고 어색한 한국어인지 알지 못했거나 알고서도 무시한 결과라 여겨진다. 요컨대 '좇다'라는 말은 위 조문에 잘 어울리는 동사가 아니다. '따르다'라는 매우 쉽고 친근한 말이 있다.


'선택에 좇아', '용도에 좇아', '내용에 좇은'과 같은 어색한 표현을 보면 마치 외국어를 접하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국민이 읽고 이해하지 못하게 차단막을 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왜 그래야 하나. 법을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국민은 법조문을 읽고 이해할 권리가 있다. 법률은 법률가들만을 위한 것인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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