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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ug 09. 2024

대충 뜻만 통하면 그뿐일까

문법은 장식품이 아니다

앞에서 민법 제478조에 나오는 '1개의 채무 수개의 급여를 요할 경우에'가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요할'의 주어가 없기 때문을 보았다. 주어에는 주격조사 ''가 와야 하는데 엉뚱하게 부사격조사 ''가 온 것이다. 조사를 잘못 썼다. 


민사소송법에서 갈라져 나온 민사집행법에도 비슷한 오류가 있다. 민사집행법 제285조 제2항은 "제1항의 취하는 채권자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이다. 


민사집행법

제285조(가압류이의신청의 취하) 

제1항의 취하는 채권자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


워낙 드러내고자 하는 뜻이 잘 파악되니 이 문장이 이상한 줄조차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제1항의 취하를 할 때는 채권자의 동의가 필요 없다는 뜻 아닌가. 그러나 필자처럼 문법을 공부했고 그래서 문법에 민감한 사람 눈에는 뭔가 매끄럽지 못하다. 이유는 민법 제478조의 '1개의 채무 수개의 급여를 요할 경우에'가 매끄럽지 못한 것과 같다. 주어가 없기 때문이다.


문장의 서술어는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인데 주어가 없다. 대신 주어 자리에 '제1항의 취하'이라는 말이 있다. '취하'의 ''가 뭔가. 부사격조사 아닌가. '제1항의 취하는'이라고 했더라면 주어가 되면서 아무 문제가 없는 완전한 문장이 되는데 '제1항의 취하'이라고 함으로써 주어가 없는 문장이 되고 말았다.


굳이 '제1항의 취하'을 쓰려면 뒤이어 나오는 말이 달라져야 한다. "제1항의 취하는 채권자의 동의가 필요하지 아니하다."라고 했더라면 문제가 없다. '동의가'가 주어이고 '필요하지'가 서술어로서 주어, 서술어가 온전히 갖추어지기 때문이다. "제1항의 취하는 채권자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니까 주어가 없어서 문법적으로 어그러졌다.


문법은 괜히 있는 장식품이 아니다. 문법을 지킬 때 문장의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문법을 어기면 뭔가가 어색해질 수밖에 없다. 민사집행법 제285조 제2항의 "제1항의 취하는 채권자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는 비록 뜻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지 모르지만 문법을 지키지 않아서 뭔가 어색한 문장이 됐다. 대충 뜻만 통하면 그만일까. 법조문은 그래서 안 된다고 생각한다. 흠을 잡혀서야 되겠는가. 주어가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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