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밭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중 Aug 22. 2024

50년대 법률가들이 남긴 이상한 문장

왜 아직도 그대로인가

민법은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후 거의 10년이 지난 1958년 2월에야 제정, 공포되었다. 그나마도 일본 민법에 크게 의존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방대한 민법 조문을 읽다 보면 1950년대 당시에 법률가들이 민법 조문을 작성하면서 얼마나 국어에 무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권리란 말은 당연히 '~ 권리'라 쓰이지 '~하는 권리'라고는 하지 않는다. '~하는 권리'는 매우 어색하고 이상하다. 민법은 갖가지 권리와 의무에 대해 규정하고 있으므로 '권리'라는 말이 곳곳에 쓰이는데 대다수 조문에서 '~할 권리'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조문에서는 '~하는 권리'가 쓰인다. 즉 '~할 권리'와 '~하는 권리'가 뒤죽박죽 섞여서 쓰이고 있다. 당연히 '~할 권리'만 맞고 '~하는 권리'는 틀렸다. 그런데 틀린 말이 곳곳에  있으니 문제다. 일테면 민법 제279조가 그렇다.


민법

제279조(지상권의 내용) 지상권자는 타인의 토지에 건물 기타 공작물이나 수목을 소유하기 위하여 그 토지를 사용하는 권리가 있다.


민법 제279조는 지상권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데 소유권이 없더라도 지상권은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토지에 대해 지상권을 가지면 그 토지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법조문을 보면 '그 토지를 사용하는 권리가 있다'라 되어 있다. '사용할 권리'라야 함은 물론이다. 


법대생과 로스쿨생들은 지상권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런 어색하고 불완전한 조문을 마주한다. '그 토지를 사용하는 권리가 있다'는 정상적인 국어가 아니다. 학생들이 정상적이고 반듯한 국어 문장을 접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왜 예비 법조인에게 이상한 법조문을 가르치나. 1950년대 법률가들이 별 생각 없이 만든 불완전한 법조문을 수십 년 동안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써 왔다. 지금이라도 고쳐야 하지 않나.


안타깝게도 이런 오류는 민법 제279조만이 아니다. 다음 민법과 민사소송법 조문을 보자.


민법

제291조(지역권의 내용) 지역권자는 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타인의 토지를 자기토지의 편익에 이용하는 권리가 있다.


제302조(특수지역권) 어느 지역의 주민이 집합체의 관계로 각자가 타인의 토지에서 초목, 야생물 및 토사의 채취, 방목 기타의 수익을 하는 권리가 있는 경우에는 관습에 의하는 외에 본장의 규정을 준용한다.


민사소송법

제385조(화해신청의 방식) 

②당사자는 제1항의 화해를 위하여 대리인을 선임하는 권리를 상대방에게 위임할 수 없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편익에 이용하는 권리', '수익을 하는 권리', '대리인을 선임하는 권리'는 모두 '편익에 이용 권리', '수익을  권리', '대리인을 선임 권리'라야 함은 물론이다. '이용할 권리'를 '이용하는 권리'라고 해도 법조문의 취지는 파악할 수 있다. '이용할 권리'는 줄여서 '이용 권리'라고도 말하니까 ''이든 '하는'이든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용 권리'와 '이용하는 권리'가 어찌 같은가. '이용할 권리'가 바르고 정확한 국어 표현이고 '이용하는 권리'는 어딘가 나사 빠진, 불완전하고 어색한 표현이다. 이런 표현이 법조문에 들어 있음은 수치스러운 일  아닌가. 그런데도 수십 년째 방치했고 지금도 그대로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 그냥 내버려두고 있나.

매거진의 이전글 사소한 오류도 오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