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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ug 28. 2024

억지스럽고 어색한 표현이 법조문의 특징?

제외될 뜻을 최고해야?

민법, 상법에는 곳곳에 생소하고 어색한 표현이 들어 있어 뜨악한 느낌을 준다. 단어와 단어의 연결이 낯설기 짝이 없다. 평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단어 연결이 적지 않은 것이다. 상법 제535조 제1항에 나오는 '청산에서 제외될 뜻을 ... 최고하여야 한다'도 그런 예다. 상법 제535조 제1항은 다음과 같다.


상법

제535조(회사채권자에의 최고) ①청산인은 취임한 날로부터 2월내에 회사채권자에 대하여 일정한 기간내에 그 채권을 신고할 것과 그 기간내에 신고하지 아니하면 청산에서 제외될 뜻 2회 이상 공고로써 최고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기간은 2월 이상이어야 한다.


상법 제535조는 주식회사의 청산에 관한 한 조항이다. 주식회사가 해산할 때 청산인은 채권자들에게 일정 기간 안에 채권을 신고할 것과 그 기간 안에 신고하지 않으면 청산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2회 이상 공고로써 최고[독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고를 통한 두 차례 이상의 최고는 청산인이 취임한 날로부터 2개월 안에 해야 한다. 


여기서 '청산에서 제외될 뜻'이 어떤가. 이게 과연 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인가. '청산에서 제외된다는 뜻을', '청산에서 제외됨을', '청산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등 많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표현을 놓아두고 하필 '청산에서 제외될 뜻을'과 같은 억지스럽고 어색해 보이는 표현을 써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이라는 말은 '무엇을 하겠다고 속으로 먹는 마음'이기 때문에 '청산에서 제외뜻을'은 훌륭하게 성립하지만 '청산에서 제외 뜻을'은 도무지 말이 안 된다. 피동의 ''과 능동적 의지를 가리키는 ''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시험에 응시할 뜻을 밝혔다'는 말이 되지만 '시험에 불합격할 뜻을 밝혔다'는 말은 없지 않나. 불합격은 내 뜻이 아니다. 합격하고 싶었지만 뜻하지 않게 떨어지는 게 불합격이다. 마찬가지로 '청산에서 제외 뜻'도 성립할 수 없고 말이 안 된다.


'청산에서 제외될 뜻을'은 '청산에서 제외된다는 뜻을', '청산에서 제외됨을', '청산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또는 '청산에서 제외하겠다는 뜻을'로 바꾸어야 한다. 왜 이런 정상적인 표현이 많이 있는데도 낯설기 짝이 없는 표현을 법조문에 두고 있나. 사람들이 못 알아보게 하겠다는 건가. 그럴 리가 없고 그렇다면 평이하고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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