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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02. 2024

무슨 뜻인지만 통하면 그만?

표현이 자연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상법은 이른바 6법의 하나이다. 그만큼 중요하고 기본적인 법이다. 그런데 군데군데 눈에 설고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표현이 있다. 다음과 같은 조문도 그런 예다.


상법

제155조(의의) 타인을 위하여 창고에 물건을 보관함을 영업으로 하는 자를 창고업자라 한다.


상법 제155조를 보자. "타인을 위하여 창고에 물건을 보관함을 영업으로 하는 자를 창고업자라 한다."라고 했다. 한눈에 무슨 뜻인지는 파악할 수 있다. 창고업자는 타인을 위해 창고에 물건을 보관하는 것을 영업으로 하는 자라는 것이다. '타인', '창고', '물건', '보관', '영업' 등이 핵심어다. 나머지 '~을 위하여', '', '', '-', '~으로 하는'과 같은 조사, 어미 등은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말은 아무렇게나 써도 되나. 문맥에 딱 들어맞는 말을 쓰지 않아도 되나. '보관'이 그런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물건을 보관하는 것을 영업으로 하는 자를"과 "물건을 보관을 영업으로 하는 자를"을 비교해볼 때 어떤가. 어느 쪽이 자연스러운가. 두말할 것 없이 "물건을 보관하는 것을 영업으로 하는 자를"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물건을 보관을 영업으로 하는 자를"은 무슨 뜻인지는 파악될지언정 자연스러운 표현이라 할 수 없다. 왜 법조문에 이런 낯설고 생소한 표현을 써야 하나. 이번에는 상법 제258조를 보자.


상법

제258조(채무완제불능과 출자청구) ①회사의 현존재산이 그 채무를 변제함에 부족한 때에는 청산인은 변제기에 불구하고 각 사원에 대하여 출자를 청구할 수 있다.


상법 제258조는 합명회사의 청산에 관한 규정으로, 합명회사는 사원 모두가 회사의 채무에 대하여 무한 책임을 지는 회사이므로 청산시 회사의 재산이 채무를 변제하기에 부족할 때에는 청산인은 각 사원에 대하여 출자를 하라고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258조 제1항에 "회사의 현존재산이 그 채무를 변제에 부족한 때에는"이라고 되어 있다.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나. "회사의 현존재산이 그 채무를 변제하기에 부족한 때에는"과 비교해 보면 "회사의 현존재산이 그 채무를 변제에 부족한 때에는"이 자연스럽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사를 명사형으로 만드는 어미는  '-음/ㅁ'과 '-기'가 있다. 그런데 '-음/ㅁ'을 써야 하는 경우가 있고 '-기'를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그는 살아 있이 분명하다."와 "그는 살아 있가 분명하다."는 어느 쪽이 자연스러운가. 당연히 전자이다. 후자는 틀린 문장이다. 그럼 "나는 그가 살아 돌아을 간절히 바란다."와 "나는 그가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어느 쪽이 자연스러운가. 이번에는 후자가 자연스럽고 전자는 틀린 문장이다. 이렇게 국어의 명사형 어미는 문맥에 맞게 달리 선택된다. 


상법 제258조의 "그 채무를 변제에 부족한 때에는"은 "그 채무를 변제하에 부족한 때에는"이어야 한다.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어미는 아무렇게나 써도 되나. 아니다. 상법을 제정할 때 정교하지 못하게 작성한 법조문을 60년 이상 써왔는데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왜 문법을 어긴 낯설고 어색한 표현을 아직까지도 그대로 두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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