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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05. 2024

조지하거나?

'조지'는 일본어 잔재다

공무집행방해죄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공무원의 공무 집행을 방해하면 형법 제136조(공무집행방해)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니 꽤 무거운 형이다. 그만큼 공무원의 공무 집행은 법의 보호를 확실하게 받는다. 그런데 형법 제136조는 두 항으로 돼 있다. 다음과 같다.


형법

제136조(공무집행방해) 

①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

②공무원에 대하여 그 직무상의 행위를 강요 또는 조지하거나 그 직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제1항과 제2항의 차이는 무엇일까. 제1항은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하여'이지만 제2항은 '공무원에 대하여'이다. 제2항에는 앞에 '직무를 집행하는'이 없다. 공무원이 지금 직무를 집행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에게 직무상의 행위를 강요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해도 공무집행방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띄는 말이 있다. 제2항에 있는 '강요 또는 조지하거나'의 '조지하거나'이다. 


'강요 또는 조지하거나'에서 '강요'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거꾸로 '조지'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일반 국민은 말할 것도 없고 법조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실제 이와 관련된 생생한 일화가 있다. 필자는 2024년 3월 한 60대 변호사를 그의 법률사무소 접견실에서 면담한 일이 있다. 1980년대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검사 생활을 10여 년 하고 퇴임한 뒤 줄곧 변호사로 활동한 그는 검사 경력이 상당한 만큼 형법에는 상당히 밝은 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필자의 책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 163~166쪽에 '조지하다'가 형법 제136조에 들어 있다고 서술된 대목을 보더니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이를 확인하기 위해 면담하다 말고 자신의 사무실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잠시 뒤 접견실로 돌아온 그는 과연 법전에 그렇게 돼 있음을 인정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지 40년이 된 변호사도 우리 형법 제136조에 '조지하거나'로 되어 있는 줄을 모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법전이 최근에 한글화되면서 '조지하거나'로 되어 있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阻止하거나'로 법전에 돼 있었고 '阻止하거나'를 '저지하거나'로 이해했던 것으로 보인다(지금도 한자로 된 법전에서는 阻止하거나이다.). 그러나 ''는 '저지'가 아니다. '조지'이다. 는 '험할 '이기 때문이다. '저지하거나'는 '止하거나'이다. 이때의 는 '막을 '이다. 1953년 형법을 제정할 때부터 형법 제136조 제2항은 '阻止하거나'였는데 그걸 법조인들은 '저지하거나'로 이해해온 것이다. 가 한자의 모양이 비슷하고 그래서 '阻止하거나'를 전후 문맥으로 미루어 '저지하거나'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형법 제136조 제2항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무원에게 그 직무상의 행위를 '강요할' 목적으로 폭행하거나 그 직무상의 행위를 '못하게 막을' 목적으로 폭행하면 공무집행방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폭행을 해서 공무원에게 직무상 행위를 강요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직무상 행위를 못하게 막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범죄다. 여기서 '못하게 막는' 것이 '저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1953년 형법을 제정할 때 '止(지)하거나'라 하지 않고 '止(지)하거나'라 했을까. 


이는 형법을 제정할 때 참여했던 1950년대 법률가들의 언어적 배경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일제강점기에 법을 공부했던 이들이고 일본의 법률에 젖어 있었다. 또한 한국어보다는 일본어에 더 익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일본어에서 '하지 못하게 막다'라는 뜻의 단어는 阻止(そし)였다. 沮止(そし)도 일본어에 있는 말이기는 했지만 沮止보다는 阻止가 훨씬 더 널리 쓰이는 일반적인 말이었다. 그러니 우리나라 형법을 제정할 때 阻止를 쓴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당시 법률가들은 일본어에서 더 일반적인 阻止를 주저없이 우리 형법 조문에 넣었을 것이다. 그 후 줄곧 우리 형법 조문에 阻止라고 되어 있었지만 법조인들은 앞뒤 문맥으로 미루어 그 뜻을 저지(沮止)로 이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어와 달리 우리말에는 '저지(沮止)'만 있고 '조지(阻止)'는 없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와 차츰 법전을 한글화하면서 阻止는 '조지'로 표기될 수밖에 없었다. '저지'가 될 수 없었다. 라는 글자는 '험할 '기 때문이었다. 법전에 阻止로 되어 있는 이상 '저지'로 표기할 수 없었다. 형법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 


만일 1953년 형법을 제정할 때 제136조 제2항이 '沮止하거나'였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阻止하거나'였기 때문에 지금 '조지하거나'로 되어 있다. 그러나 국민 누구도 '조지하거나'가 무슨 뜻인지 모른다. 국어에 '조지하다'라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형법을 한글화하고 '阻止(조지)하거나'는 '저지하거나'라 해야 한다. 1953년에 제정된 형법은 환골탈태해야 마땅하다. 국민 눈높이에 맞게 다시 써야 한다. 형법에 남아 있는 일본어 잔재를 아직도 씻어내지 않고 있음은 여간 수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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