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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18. 2024

후생가외(後生可畏)

남쪽 지방으로 1박 2일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손위 처남의 칠순 잔치에 참석했다. 처남 형제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자녀들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일찌감치 예약해 둔 식당에서 뷔페 음식을 맘껏 즐겼다. 수다도 원 없이 떨었고...


묘한 풍경이 있었다. 널찍한 식당 별실에서 60대인 처가 형제들은 그들끼리 한쪽에서 따로, 20대, 30대인 그 자녀들은 다른 한쪽에서 그들끼리 모여서 웃음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왜 노소는 같이 어울리지 못했나. 이유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60대와 20~30대는 공통의 화제가 빈약했던 것이다. 그래서 60대는 60대끼리, 20~30대는 그들끼리 어울려 저녁 시간을 보냈다.


처조카가 여섯 명이다. 우리 애들까지 여덟 명. 여덟 명 중 둘은 올해 들어 결혼했으니 그 배우자까지 모두 10명의 젊은이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끼고 싶었지만 그건 욕심 같아서 그냥 다가가 사진만 찍어주었다. 조카 누군가가 날 보더니 "와! 미디어팀!" 하며 반겨주었다. 그들 모습을 찍었음은 물론이고 마지막 샷은 내 모습도 넣어서 셀카도 찍었다.


굳이 촌수로 따지자면 2촌인 처가 형제들은 별로 말없이 음식을 가져와 먹기 급급한 데 반해 4촌 사이인 처조카들은 얼마나 분위기가 좋은지 모두들 신이 났다. 각자 걷는 길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누구 하나 노는 사람이 없다. 한결같이 자기 직업에서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누구는 디자이너, 누구는 셰프, 누구는 개발자, 누구는 회사원...... 젊으니 몸 건강하고 자기 일에 열심이니 뭘 더 바라랴.


만일 사촌끼리 모였는데 할 말 별로 없고 서먹서먹하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그런데 아무도 소외되는 이 없어 보였다. 나이도 고만고만했고 다들 생기 넘치고 활발했다. 사는 게 힘들다고 버거워하는 젊은이도 없어 보였다. 각자 자기 일에 진심이었고 사촌들 사이의 친숙함과 정겨움을 한껏 만끽하는 듯했다. 이들을 이렇게 단단히 묶어준 것은 아직도 정정하신 90 훨씬 넘은 할머니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젊은이들은 이렇듯 즐겁고 화기애애한데 그들의 부모인 우린 왜 생기를 잃고 무덤덤해졌을까.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우리도 30년 전엔 분명 꽤나 활발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처조카들을 보면서 받은 느낌은 '후생가외(後生可畏)'로 압축된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젊은이들이 나보다 낫다. 각자 자기 일에 충실할 뿐 아니라 주변을 배려하는 맘 씀씀이가 느껴졌다. 반듯하게 자랐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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