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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를 보류한?

번역 오류

by 김세중

민법 제145조에 "이의를 보류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의는 누구나 무슨 뜻인지 안다. 손을 번쩍 들며 "이의 있습니다." 하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법률용어로도 '이의'는 '타인의 행위에 대하여 반대 또는 불복의 의사를 표시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보류다. 이의를 보류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 민법 제145조는 다음과 같다.


민법

제145조(법정추인) 취소할 수 있는 법률행위에 관하여 전조의 규정에 의하여 추인할 수 있는 후에 다음 각호의 사유가 있으면 추인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의를 보류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취소', '법률행위', '추인' 같은 말은 대단히 깊은 뜻을 가진 법률용어다. 여간 공부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제145조의 요점은 명료하다. 취소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취소를 안 했다면 다음 사유가 있는 경우 추인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 단서가 붙어 있다. 이의를 보류한 때에는 추인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때의 '이의를 보류한'이 무슨 뜻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이의를 남긴'이란 뜻이다. 그럼 어째서 '보류한'이 '남긴'의 뜻이 되는가? '보류하다'에 '남기다'라는 뜻이 있는가. '보류하다'에는 '남기다'라는 뜻이 없다. '어떤 일을 당장 처리하지 아니하고 나중으로 미루어 두다'라는 뜻이 있을 뿐이다. 그럼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민법 제145조의 '보류한'은 일본 민법 조문을 국어로 옮기면서 잘못 번역한 것이다. 오역했다. 일본 민법의 해당 조문은 다음과 같다.


(法定追認)

第百二十五条 追認をすることができる時以後に、取り消すことができる行為について次に掲げる事実があったときは、追認をしたものとみなす。ただし、異議をとどめたときは、この限りでない。


일본 민법의 '異議をとどめたときは'를 '이의를 보류한 때에는'으로 번역한 것인데 일본어 'とどめる'(도도메루)는 한자로 표현하면 '留める'로서 '남기다'라고 해야 바른 번역이다. 그러나 1950년대의 우리나라 법률가들은 그만 에 이끌린 나머지 엉뚱하게도 가 들어간 라는 단어를 썼다. 그 결과 뜻이 반대가 되고 말았다. '이의를 남기다'는 이의를 제기한다는 뜻이고 '이의를 보류하다'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나중으로 미루어 두는 것이니 말이다.


이런 잘못을 깨닫고 법무부가 구성한 민법개정위원회에서는 2015년과 2018년에 작성한 전면적인 민법개정안에서 제145조의 '이의를 보류한'을 '이의를 남긴'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 민법개정안은 국회에서 임기 내에 처리하지 않으로써 자동폐기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민법 제145조는 '이의를 보류한'이다. 그리고 수많은 법학도들이 이 구절을 읽으며 의아하게 생각한다. 법학자들도 이 부분 해석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럴 일이 아니다. '이의를 남기면'으로 고치면 간단하다. 애당초 민법을 제정할 때 '이의를 남기면'이라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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