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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아웃'에 반대한다

너무 오글거린다

by 김세중

야구장의 선수 대기석을 dugout이라 한다. 마땅히 한글로 써야 함에도 왜 영어로 썼나? 이 말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더그아웃'이라 돼 있고 '덕아웃'은 없다. 그러나 내 머리에는 '덕아웃'이 입력되어 있지 '더그아웃'은 들어 있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사전에 '더그아웃'이라 돼 있다고 '더그아웃'으로 써야 하나? 사전이 내 말을 통제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만 이렇게 생각할까.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는 1920년부터 1999년까지의 신문 기사를 보유하고 있고 검색을 허용한다. '덕아웃'을 넣어 보았다. 856건이 검색되었다. '더그아웃'을 넣어 보았다. 189건이 검색되었다.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다. '덕아웃'이 우리말에서 굳어진 관용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1988년에 만들어진 외래어표기용례집에는 dugout에서 온 외래어의 한글 표기를 '더그아웃'으로 해 놓았을까. 용례를 심의하는 위원 몇몇이 현실을 도외시하고 탁상에서 결정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치 staff에서 온 외래어가 '스탭'이 압도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태프'로 정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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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게 '더그아웃'이라고 발음하라고 한다면 오글거려서 도저히 그렇게는 발음하지 못할 것 같다. 당연히 '덕아웃'이 자연스럽다. 그럼 왜 외래어표기용례집을 만든 사람들은 '더그아웃'을 쓰라고 했을까. 영어의 유성자음 g는 어말에 왔을 때 받침 ''으로 적지 않고 모음 ''를 붙여 ''로 적는다는 외래어 표기법 규정에 매여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bag이나 big 같은 말은 똑같이 g로 끝나는 말이지만 '배그'나 '비그'라 하지 않고 '', ''이라 한다. 외래어표기용례집에 bag을 '배그'가 아닌 ''이라 하지 않았나? '', ''을 관용으로 인정했다. 그렇다면 왜 dugout은 '덕아웃'이라 하지 않나? 앞뒤가 안 맞는다. 일관성이 없다.


말의 주인은 언중이다. 몇 안 되는 사람이 외래어 표기 용례 심의를 한다고 모여 앉아 언어현실을 도외시한 채 표기법 규칙을 내세우며 엉뚱한 말을 표준으로 정했고 그걸 국어사전이 받아서 표제어로 삼았다. 하지만 언중은 여전히 관용을 따른다. '덕아웃'이라 하는 것이다. 일부 착한(?) 사람들이 사전을 따라서 '더그아웃'이라 하긴 한다. 특히 언론사 교열 부서가 이를 따른다. 그래서 신문에는 '더그아웃'이라 나오는 게 보통이다. 사전이 언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규범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고 따로 논다. 평행선을 달린다. 사전을 바꾸면 혼란은 해소된다. 나는 '더그아웃'에 반대한다. 발음하기 매우 거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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