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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서두르라

언어유희 아닌가

by 김세중

일전에 필자는 한 신문의 칼럼에 대해 솔직하고 진솔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없다고 썼다. 바로 같은 신문에 이틀 뒤 실린 다른 칼럼이 필자를 당황하게 한다. 도무지 주장이 설득력이 없고 황당하기 때문이다. 칼럼의 마지막 두 단락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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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헌재는 과거에는 탄핵 사건을 전원일치로 판결했는데 이번에는 그것도 어려울 듯싶다고 했다. 아직 탄핵심판의 선고는 내려지지 않았다. 3월에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원일치가 어려울 듯싶다고 했다. 그렇게 추정하는 것은 자유다. 문제는 그렇게 추정하는 근거나 이유를 제시해야 하지 않는가. 아무런 논거 없이 추정을 말했다. 전원일치일지 아닐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데 왜 이런 추측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전원일치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말하는 건가.


둘째, 정치권이 헌법 개정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탄핵과 기각의 폭발성과 인화성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참 이상하다. 헌법 개정은 지난한 과정이다. 헌법 개정안이 어떤 모습, 어떤 내용일지는 천 갈래, 만 갈래일 수 있다. 어떤 헌법 개정안이라도 상관없다는 건가. 덮어 놓고 헌법만 개정하면 파괴적 정면충돌을 면한다는 건가.


셋째, 헌재는 '천천히 서두르라'고 했다. 빨리, 급하게 하는 게 서두르는 것이다. '천천히 서두르는' 것은 모순이다. 말이 안 된다. 그걸 알기에 따옴표를 써서 '천천히 서두르고'라고 한 것 같다. 일종의 수사법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천천히 하고'라고 하자니 너무 속이 보여서 '천천히 서두르고'라고 한 거 아닌가. 솔직하지 않으니 이런 일이 빚어진 것 같다. '천천히 서두르고'는 언어유희에 가깝다. 달리 말장난이라 한다.


무릇 칼럼은 떳떳하고 당당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는 글의 뜻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고 동의하든 말든 한다. 그렇지 않고 모호하고 모순에 차 있고 근거 없이 말하니 무슨 주장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속 시원하고 공감이 가는 멋진 칼럼은 언제나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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