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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밭

모호한 글

진솔해야 설득력 있다

by 김세중

필자는 2017년에 '품격 있는 글쓰기'라는 책을 낸 바 있다. 주로 신문의 사설과 칼럼을 언어적인 측면에서 분석한 책이었다. 사설과 칼럼은 대표적인 논설문으로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쓴다. 설득을 하려면 글이 잘 읽혀야 한다. 문장이 문법에 맞아야 하고 논리적으로 건너뜀이 없어야 수긍이 가고 잘 읽힌다. 훌륭한 사설, 칼럼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글도 꽤 있었다.


오늘 한 신문의 칼럼 제목은 '탄핵 대 기각 두 선택지밖에 없나'였다. 지금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종반을 향해 치닫고 있다. 탄핵 인용기각 두 가지 말고 무엇이 있나. 그런데 마치 제3의 방안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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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의아함이 느껴져 글을 끝까지 읽었다. 칼럼의 마지막이 이랬다.



(전략) 탄핵 심판의 끝이 ‘파면 대 기각’의 너 죽고 나 죽자밖에 없는 것이 아니다.


윤 대통령이 먼저 책임을 깨끗이 인정해야 한다. 민주당도 과정은 다르나 결과는 같을 수 있는 정치적 해결책에 열린 자세로 나왔으면 한다. 그러면 헌법 재판도 출구를 찾을 수 있다. 누구든 100대0으로 이기려 하다가는 모두를 패자로 만들 것이다.



칼럼 제목을 보고 탄핵 인용과 기각 말고 다른 무엇이 있는 줄 알고 글을 읽은 독자는 끝까지 탄핵 인용과 기각 말고 다른 선택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윤 대통령이 먼저 책임을 깨끗이 인정해야 한다." 같은 모호한 말만 있을 뿐이다. '책임을 깨끗이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필자는 이 칼럼에 달린 많은 댓글을 읽고서야 대통령이 스스로 직에서 물러난다고 선언하면 탄핵도, 기각도 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댓글을 단 일부 독자가 대통령이 책임을 깨끗이 인정하라는 건 물러나라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통령 하야'가 바로 칼럼을 쓴 이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었다.(물론 추측이지 칼럼 쓴 이의 속내를 알 수는 없다.)


헌법재판소법을 읽어 보았다. 탄핵 심판 중에 직을 사퇴한 경우에 탄핵 심판을 어떻게 맺는지에 대한 규정은 없어 보였다. 다만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2항에 "② 피청구인이 결정 선고 전에 해당 공직에서 파면되었을 때에는 헌법재판소는 심판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파면이 아니지 않은가. 여하튼 탄핵 심판 중에 직을 사퇴하는 경우에 대한 헌법재판소법상의 규정은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상식적으로 사퇴를 선언한 사람에 대해서 탄핵심판 청구를 인용하든 기각하든 무의미할 것이다. 본인이 그만두겠다는데......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왜 칼럼을 모호하게 쓰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칼럼은 잘 보지 못했다. 독자를 설득하는 것은 고사하고 궁금증만 잔뜩 자아냈을 뿐이다. 글은 솔직하고 진솔해야 한다. 그래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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