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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밭

기이한 만남

변화와 발전의 사각지대

by 김세중

청주 고속버스터미널 부근에서 기이한 만남이 있었다. 60대 중반 남자와 20대 후반 남자가 처음 만나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길래 네 시간이나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었을까. 나이차도 한참 나고 전공 분야도 아주 달랐지만 공통의 화제가 있어 그렇게 오래 이야기할 수 있었다. 60대는 언어학 전공의 은퇴한 공무원, 20대 후반은 예비 법조인. 그리고 대체로 뜻이 맞았다. 세대차를 넘어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필자는 법학에 문외한이다. 언어학을 전공했고 국어 관련 기관에서 26년여 근무하고 명퇴한 지 10년 가깝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법에 관한 책을 두 권 집필했다. '민법의 비문'과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 1950년대입니다'가 그것이다. 언어학 전공자의 눈으로 볼 때 대한민국의 가장 기본적인 법률인 민법, 상법, 형사소송법, 형법은 문장이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불량하다. 말이 안 되는 문장을 비문(非文)이라 하는데 이들 법조문에 비문이 너무나 많다.


단 한 조문도 비문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왜 이렇게 많은 비문이 우리 법조문에 있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이들 법률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에 만들어졌는데 당시 법률 제정을 주도했던 법조인들은 20세기 전반에 일본에서 또는 국내에서 일본인으로부터 일본어로 법을 공부했던 분들이었다. 일본어에 푹 젖어 있던 분들이었다는 뜻이다. 국어보다는 일본어가 더 편하고 익숙했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한국어로 작성한 법조문에 국어답지 않은 문장이 수두룩할 수밖에!


한 예로 민법 제2조 제1항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인데 '신의에 좇아'는 일본 민법 조문의 '信義に従い'을 별 생각 없이 번역한 것으로 번역을 한국어답게 하지 못했다. '신의를 지켜'나 '신의에 따라'라고 했어야 한다. '신의를 좇아'라고만 했어도 문법을 어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아닌 '신의에 좇아'라고 하고 말았고 국어문법에 맞지 않는 이 표현이 민법 제2조 제1항에 지금도 그대로 있다.


다른 예로 형법 제136조(공무집행방해) 제2항에 나오는 '조지(阻止)하거나'를 들 수 있다. 이 예는 국어문법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니고 일본어 단어가 우리 법조문에 들어온 예다. 한국어에는 '저지(沮止)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같은 뜻의 일본어는 '阻止'다. 일본어 발음은 '소시'다. 형법은 1953년에 제정됐는데 당시 법률가들의 머릿속에는 한국어 '저지'는 없고 일본어 '阻止'(소시)가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형법 조문에 당연히(?) 阻止를 넣었던 것이고. 그런데 阻止의 국어 한자음은 '조지'다. 그러니 지금 우리 형법에 '조지하거나'일 수밖에 없다. 1950년대 법률가들이야 일본어에 젖은 분들이니까 당시 형법에 阻止를 넣을 수밖에 없었다 해도 왜 지금까지 '阻止'를 '저지(沮止)'로 고치지 않고 놓아 두고 있는지가 안타깝고 답답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조지하다'라는 말을 알거나 쓰는 사람이 없는데 말이다.


법은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것이고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법조문을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반드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다. 그러나 문법을 어긴 법조문은 금방 이해가 될래야 될 수 없다. 문법을 어겼는데 어떻게 쉽게 이해되겠는가. 법조문에 들어 있는 숱한 비문은 국민이 법을 이해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장애물은 걷어내야 마땅하다. 어떻게 장애물을 걷어낼 수 있나? 법 개정밖에 방법이 없다. 법을 개정하지 않고는 단 한 글자도 고칠 수 없다. 문법에 맞지 않는, 틀린 법조문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정부와 국회에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 법조인들은 비문에 익숙해진 나머지 대체로 틀린 줄 잘 모르고 그래서 움직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두 사람은 처음 만남에서 나누었고 대체로 공감했다고 생각한다. 법 개정은 국회의원들만 할 수 있다. 그들을 움직이려면 국민이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민법, 상법, 형사소송법, 형법의 문장의 보기 딱한 참담한 실상을 많은 국민이 알아야 한다. 국민이 실상을 모르는데 국민으로부터 개선 요구가 나올 리 없다. 아직은 국민들이 법조문의 부끄러운 실정을 잘 모르지만 차츰차츰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변화의 싹이 보일 거라 믿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루어 이제 선진국 운운하는 정도까지 이르렀는데 국가의 기틀인 기본법의 법조문만은 낙후하기가 말도 못한다. 변화와 발전의 사각지대다. 안 될 일이다. 오늘 세대차를 넘어 두 사람은 서로 깊이 공감하고 의기투합했다. 그랬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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