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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특히 유쾌했던 것은

번지수 잘못 짚었던 민법 개정

by 김세중

어제 청주에서 띠동갑 젊은이와 마주앉아 실컷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통 열두 살 차이를 띠동갑이라 하지만 서른여섯 살 차이도 띠동갑이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든 쥐띠 두 사람이 세대차를 넘어 공통의 화제를 가지고 원 없이 의견을 교환했다. 필자의 말에 공감하는 것 같아 흡족했지만 특히 좋았던 순간이 있었다. '만 나이 통일법'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다.


2022년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리고 12월 27일에는 대통령이 개정된 민법을 공포했다. 이듬해인 2023년 6월 27일부터 시행됐고. 이를 정부에서는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개정된 민법을 만 나이 통일법이라 하면서 말이다. 늘 대통령을 비판하고 반대하던 어떤 야당 국회의원은 대통령의 치적이 있다면서 전국민을 한 살 또는 두 살 젊게 해주었다고 칭송했다. 그런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민법은 1958년 제정 때부터 만 나이를 쓰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이랬다.


제158조(연령의 기산점) 연령계산에는 출생일을 산입한다.


나이 계산에 관한 민법 조항은 2022년 12월 이른바 '만 나이 통일법'에서 다음과 같이 개정되었다.


제158조(나이의 계산과 표시) 나이는 출생일을 산입하여 만(滿) 나이로 계산하고, 연수(年數)로 표시한다. 다만, 1세에 이르지 아니한 경우에는 월수(月數)로 표시할 수 있다.


'연령계산에는 출생일을 산입한다'가 '나이는 출생일을 산입하여 만(滿) 나이로 계산하고'로 바뀌었지만 그 내용이 그 내용이다. 내용은 전혀 안 바뀌었는데 표현만 좀 친절해졌을 뿐이다. 민법은 애초부터 나이는 만 나이로 계산한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치 국민들이 집에서 세는 나이를 쓰는 것은 민법에 그렇게 돼 있기 때문인 양 민법을 개정하는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표현은 친절해졌지만 사실은 개정된 내용이 없었다. 나이 계산은 출생일을 산입한다는 게 바로 만 나이로 계산한다는 거 아닌가.


이를 언론도 지적하지 않았고 뻔히 실상을 알았을 민법학자들도 침묵했다. 정부에서는 엄청난 공을 들여 만 나이 통일법이 만들어졌다고 홍보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대국민 사기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에서 세는 나이를 쓴 것은 민법과 아무 관계가 없었다.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써 왔다. 그렇다면 그런 전통, 관습을 바꾸려면 민법을 개정할 일이 아니었다. 민법 자체가 이미 만 나이를 쓰라고 돼 있지 않나. 전통, 관습을 바꾸려면 방송을 통한 캠페인을 꾸준히 지속하든,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다루든 해야 한다. 수백 년 이어온 전통, 관습이 그리 쉽게 바뀌겠나. 아무튼 만 나이를 쓰게 하기 위해 민법을 손댈 일이 전혀 아니었다. 민법 개정은 번지수를 단단히 잘못 찾은 것이었다.


로스쿨 진입을 눈앞에 마주한 청년의 눈이 반짝였다. 내 설명을 처음 듣는 것 같았다. 그리고 듣는 즉시 '만 나이 통일법'의 관련 경위를 바로 이해했다. 필자는 그동안 수 차례 브런치를 통해서나 사람들과 만나서 '만 나이 통일법'(민법)의 허구성을 이야기했지만 맞장구쳐 주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세상은 정부가 국민을 위해 마치 큰 일을 한 것처럼 알았다.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필자는 머지않은 장래에 법조인이 될 청년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흥분을 느꼈다. 이런 젊은이들이 늘어나리라 믿는다. 세상은 젊은이들이 바꾸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그들이 살아갈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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