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 어긴 법조문은 로스쿨생, 법대생 나아가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필자가 브런치에서 국민의 법률 접근성 개선이라는 표현을 썼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비슷한 이야기를 아마 하긴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법조문이 문법에 안 맞으니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되고 그래서 국민이 법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게 필자가 늘 주장하던 바였으니까. 그런데 한 예비 법조인이 브런치의 필자 글에 공감한다는 글을 보내오면서 "언어적 문제 해결을 통한 국민들의 법률 접근성 개선이라는 어젠다가 매우 감명 깊게 다가왔습니다"라고 했을 때 필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다른 사람에게서 이런 멋진 표현을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미 필자가 어딘가에서 쓴 글에 있는 표현을 인용했든 스스로 이런 표현을 생각해냈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국민들의 법률 접근성 개선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어젠다가 돼야 한다는 게 중요하고 예비 법조인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반갑고 감동적이다.
그럼 왜 기성 법조인들은 이런 데에 생각이 미치고 있지 않을까. 이것이 실은 굉장히 궁금하고 안타깝다. 물론 이해가 되긴 한다. 기성 법조인들은 이미 비문법적이고 비정상적인 법조문에 너무 젖어 버려서 그게 이상한 문장인 줄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불편하지 않다. 법조문의 속뜻이 중요하지 조문의 표현이 국어문법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가 중요치 않은 것이다. 그들은 법조문의 속뜻을 다 이해한다. 그러니 법조문이 안고 있는 언어적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 저명한 법학자들일수록 더욱 그러한 것 같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어떤 법조문의 법리만 중요할 뿐 조문의 문장이 국어문법에 맞는지 여부는 도무지 관심 밖인 것 같다.
하지만 국어문법에 맞지 않고 국어답지 않은 괴상한 법조문은 법을 공부하기 시작하는 로스쿨생이나 법대생들에게는 장애물 내지 암초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민법 제162조 제1항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를 처음 접하는 로스쿨생이나 법대생이 이 조문을 접하고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자꾸만 읽고서야 비로소 이 조문이 의미하는 바를 깨우치지 않을까. 만일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라고 돼 있어도 그렇게 자꾸만 읽고 또 읽어야 할까. '완성하다'는 타동사인데 자동사 '완성되다'가 쓰여야 할 자리에 타동사가 잘못 쓰였고 그래서 민법 제162조 제1항 문장은 문법을 어겼다. 문제는 이런 비문이 비단 민법 제162조 제1항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숱한 비문이 민법을 비롯한 국가 기본법에 들어 있다. 이는 1950년대 법 제정 당시 법률가들의 국어 수준을 반영한다.
법조문이 안고 있는 언어적 문제를 해소하면 로스쿨생, 법대생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법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현재와 같이 문제 많은 법조문은 국민의 법률 접근을 가로막고 있다. 이른바 '나홀로소송인'이 꾸준히 늘어나 점점 더 많은 국민이 소송을 변호사나 법무사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고자 나서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기성 법조인이나 입법권자인 국회의원들은 법조문의 언어적 문제 해결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럴 법조인은 많지 않겠지만 국민이 법을 쉽게 이해하면 법조인의 전문성이 위협받지 않을까 염려해 틀린 법조문인 줄 알면서도 내버려두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법조인도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그보다는 국어문법에 맞지 않는 법조문이라도 이미 본인들은 너무 익숙해져서 불편한 줄 모르니 법 개정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문법을 지키지 않은 법조문은 로스쿨생, 법대생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로스쿨생, 법대생 그리고 일반 국민은 지금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
혹시 어떤 법조인이 국민이 법을 쉽게 접근하면 법조인의 전문성이 위협받지 않을까, 그래서 법조인의 일거리가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기우이다. 왜냐하면 법조문이 문법에 맞게 돼서 쉽게 이해된다 해도 그 법조문과 관련된 온갖 복잡한 지식, 관련 판례 등까지 일반 국민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법률 전문가만 알 수 있다. 결국 국민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다. 오히려 의뢰인인 국민이 법조문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하면 할수록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의사소통도 더 원활해질 수 있다. 마치 환자가 병리에 관한 기초적인 이해를 하고 있으면 의사는 환자에게 더 많은 설명을 해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법조문이 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문법에 맞아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도, 모든 국민에 적용되는 법을 국민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두말이 필요 없는 당위다. 그리고 문법에 맞는 법조문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따르라고 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국가의 책무가 방치되고 있다. 벌써 수십 년째 그렇다. 국민이 깨어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