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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하기 때문에?

법조문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은 여간 후진국이 아니다

by 김세중

지난 3월 7일(금)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윤석열 피고인에 대해 구속 취소를 결정했다. 검찰은 즉시항고를 하지 않고 석방 지휘를 했고 이튿날인 3월 8일(토) 피고인은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와 대통령 관저로 돌아갔다. 월요일 아침에 대검찰청에는 기자들이 검찰총장의 출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총장이 탄 차 문이 열리고 총장이 내렸다. 곧 질의응답이 이루어졌다. 왜 검찰이 즉시항고를 하는 대신 석방을 했느냐는 기자의 당연한 질문에 검찰총장은 준비된 듯한 답변을 차분히 이어갔다. 그런데 검찰총장의 말 속에서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이상한 구절이 들어 있었고 필자의 미간은 찡그려졌다. 이랬다.


"... 헌법재판소에 의해서 보석과 구속집행정지에 대한 즉시항고는 두 차례 위헌 결정이 있었습니다. 법원의 인신구속에 관한 권한은 법원에 있다는 영장주의와 적법 절차의 원칙, 과잉 금지의 원칙에 위반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명확한 판단이 있었고 ... "




필자의 얼굴이 찌푸려진 것은 '과잉 금지의 원칙에 위반하기 때문에'라는 대목에서였다. '원칙에'가 어쩔 수 없이 이미 나왔다면 뒤에는 '위반기 때문에'가 오든지 '반하기 때문에'라야 한다. 그래야 국어문법에 맞다. '위반하기'를 꼭 써야겠으면 '과잉 금지의 원칙을 위반하기 때문에'라야 했다. 이도 저도 아니고 '과잉 금지의 원칙에 위반하기 때문에'라고 했다. 거의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테고 의미 전달에도 문제가 없었겠지만 문법의 관점에서 보면 참 이상한 말을 했다. 틀린 말이었다.


검찰총장은 수천 명 검사들의 수장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엄청나게 똑똑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그의 말은 조리정연한 듯 보였고 언변이 그만하면 훌륭했다. 그러나 '과잉 금지의 원칙에 위반하기 때문에'와 같은 말도 안 되는 표현을 서슴없이 썼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 수많은 법률이 있지만 민법만큼 중요한 법이 없다 할 것이다. 조항의 양도 방대하지만 속뜻도 무궁무진하게 깊고 모든 법률의 원류라고 한다. 그 민법에 '~에 위반하다'라는 표현이 무려 열다섯 군데나 들어 있다. 1950년대에 민법을 제정하면서 당시 법률가들이 그렇게 썼다.


민법은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달달 외우다시피 한다.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다 그런 과정을 거쳤다. 검찰총장도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에 위반하다'는 국어문법에 맞지 않는, 틀린 표현이지만 민법에 숱하게 들어 있다 보니 법조인들은 그게 틀린 표현인 줄 까맣게 모른다. 몸에 배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언어생활을 하면서 '~을 위반하다'라고 하지 '~에 위반하다'라고는 하지 않는다. '법률을 위반하다', '규정을 위반하다', '약속을 위반하다'라고 하지 '법률에 위반하다', '규정에 위반하다', '약속에 위반하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오로지 법조문에서만 '~에 위반하다'가 있다. 법은 문법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성역인가. 문법의 치외법권 지대인가. 그럴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검찰총장이 태연하게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 말을 듣는 국민들 중에도 그걸 알아채는 사람이 드물다. 법에 대해서는 누구나 머리를 숙이고 그에 따르는 마음이 깊이 배어 있는 듯하다. 이는 물론 바람직한 태도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법을 따르고 법에 복종하는 자세야말로 당연히 국민에게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이라고 완벽한가. 법이 문법을 어겼는데도 그 법을 문법에 맞게 고칠 생각을 않고 어긴 법을 그대로 따라야 하나. 아닐 것이다. 비단 '~에 위반하다'뿐이 아니다. 수많은 어처구니없는 문법적 오류가 우리나라 민법, 상법, 형법, 형사소송법 조문 곳곳에 들어 있다. 그런 언어적 오류가 국민이 법을 이해하는 것을 더디게 하고 가로막고 있다. 국민이 법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을 가로막으면서 국민에게 법을 따르라고 할 수 있나. 법은 법조인들의 전유물인가. 아니지 않은가. 무엇보다 당장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는 로스쿨 학생, 법대생들부터 국어문법에 맞지 않는 이상한 법조문들 때문에 공부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왜 그들을 괴롭히나. 낡고 오류 많은 법조문은 전면적으로 손보지 않으면 안 된다. 법조문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여간 후진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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