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가고 싶은 이유가 있다
2주 전에 영흥도를 한 바퀴 돌다시피 했는데 오늘 다시 찾았다. 그땐 국사봉에 오르고 장경리해변, 십리포해변을 거쳐 영흥버스터미널로 돌아왔다. 오늘은 지난번에 가지 못한 양로봉을 찾아 나섰다. 역시 걸어서 영흥도를 훑는다. 섬을 운행하는 버스가 드문드문 다니기는 하지만 역시 여행은 도보여행이다. 터벅터벅 걸어서 간다.
터미널을 나와 서쪽으로 쪽 곧은 길을 따라가는 건 같았지만 영흥성당쪽으로 빠졌던 지난번과 달리 오늘은 줄곧 남쪽으로 간다. 해군영흥도전적비 앞을 지나는데 바닷가에는 퇴역한 해군 함정이 서 있다. 참수리 263호정이다. 계속 가니 펜션, 카페가 연이어 나오는데 곧 길이 막혀 있었다. 돌아나와야 하나 하다가 공터를 지나 언덕을 올라서니 다시 마을길이 나타났다. 그리고 조경이 기막힌 집들이 좌우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꾸지'란 말이 씌어 있었다. 집들에 붙여진 명칭인 듯싶었다. 그리고 곧 영흥면사무소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동사무소가 이렇게 조용하고 아늑한 곳에 기품 있게 자리한 건 별로 보지 못했다. 처음인 듯싶다. 그곳은 영흥로251번길이었는데 나는 마치 꿈을 꾼 듯했다.
다시 영흥도의 큰길인 영흥로로 나왔고 이번에는 비스듬한 산기슭에 지중해풍의 주택단지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동네 입구에는 하늘채마을이라는 표지가 씌어 있었다. 평화로워 보였다. 그곳을 지나자마자 영흥초등학교 입구가 나타났고 그 부근에서 실로 감동적인 일을 경험했다. 시골이라 인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맞은편에서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나와 마주칠 즈음 여러 소년의 입에서 "안녕하세요" 하는 말이 나오지 않는가. 생면부지의 어른과 마주치자 반사적으로 인사하는 그들을 접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일을 도회지에서 어떻게 경험할 수 있나. 그리고 시골이라고 다 이럴까. 대체 뉘집 자식들이길래 이리 반듯하게 컸을까. 가슴이 뭉클했다.
작은 길로 꼬부라졌다. 언덕을 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발전소가 있는 동네다. 영흥에너지타운으로 들어서니 산속에 아늑한 아파트단지가 있었다. 발전소에 근무하는 이들의 사택일 것이다. 그리고 등산로 입구가 보였고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 길을 따라 줄기차게 가면 양로봉이 나올 것이다. 숲길은 좁다랐고 인적은 없었다. 심지어 양로봉에 이를 때까지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도중에 앉을 만한 자리가 보이길래 싸가지고 온 먹을 것을 꺼내 점심 삼아 먹었고 이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꽤 올랐을 무렵 헬기장이 있었다. 점차 소음이 커졌다. 영흥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등산로에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대신 발전소에서 울려퍼지는 소음은 참으로 대단했다. 어쩌다 한번 겪는 나야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매일 그곳에서 근무하는 이들을 얼마나 힘들까. 아무리 적응이 되면 낫다기로소니 말이다.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드디어 양로봉인 듯싶은 곳에 이르렀다. 사실 국사봉과 달리 양로봉은 표지가 없었다. 어디가 양로봉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전망 좋은 곳이라는 데에 이르니 이 부근이 양로봉이겠구나 싶었을 뿐이다. 전망 좋은 곳에는 발전소에서 세워놓은 경고판이 있었다. 더 이상 가면 안 된다는 당부였다. 과연 전망은 참 좋았다.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자월도와 그 뒤로 멀리 보이는 섬들......
장경리해변쪽으로 하산을 서둘렀다. 마지막으로 전망대가 하나 더 있었다. 그곳도 전망이 제법 좋았다. 전망대를 지나니 산길은 매우 넓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나타났다. 얼마 가지 않아 장경리해변에 이르렀고. 이렇게 해서 양로봉도 밟아보았다. 영흥에너지타운에서 장경리해변까지 오는 동안 사람이라곤 마지막 전망대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한 사람 말곤 아무도 없었다. 호젓함의 극치였다고나 할까.
2주 전엔 장경리해변에서 계속 걸어 십리포해변도 가고 내처 영흥버스터미널까지 걸었지만 오늘은 장경리해변까지만 걸었다. 해변을 조망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마실 걸 사먹은 뒤 다시 장경리해수욕장 입구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영흥버스터미널로 돌아왔다. 걸은 거리는 11.74km가 찍혀 있었다. '꾸지'가 유난히 많았던, 아름다운 조경을 자랑하는 영흥로251번길이 인상적이었고 하늘채마을도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풋풋한 소년들의 인사였다. 지난번과 이번으로 영흥도는 다 둘러봤다 싶었는데 다시 또 가고 싶은 마음이 우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