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밭

의암호나들길을 걷다

춘천은 자꾸만 가고 싶은 도시다

by 김세중

3주쯤 전에 춘천에 갔었다. 구봉산에 올랐다가 내려온 곳이 구봉산전망대카페거리였는데 춘천 시내를 내려다보는 전망이 압권이어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깊은 인상을 안고 서울로 돌아왔는데 오늘 다시 춘천을 찾았다. 오늘은 산이 아니라 강변 따라 줄곧 평지를 걸었다. 의암호나들길이었다. 소양강변길이라고도 하는가 보다.


의암호나들길을 찾게 된 것은 순전히 인공지능 덕이다. 인공지능에 춘천에서 걷기 좋은 길을 추천해달라 했더니 춘천에는 봄내길이 1코스부터 8코스까지 있는데 그중 4코스가 의암호 둘레를 걷는 의암호나들길이라는 것이었다. 코스를 보니 언덕은 조금도 없이 시종 평탄한 길이어서 이내 마음이 끌렸고 춘천으로 향하게 됐다.


전철을 타고 춘천역에 내리니 벌써 12시가 좀 지나 있었다. 서서히 의암호 강변으로 접근했다. 호수가 펼쳐져 있었고 서울에선 보지 못하던 광경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하중도로 향해 나 있는 춘천대교는 가운데 둥근 원이 아름다웠고 남쪽으론 삼악산이 아닌가 싶은 산이 저 멀리 우뚝 서 있었다. 바로 앞에는 넓은 잔디밭을 앞에 둔 대형카페가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몇 시간은 걸어야 하니 벤치에 앉아 가져온 먹거리를 점심으로 삼아 먹었다.


북쪽으로 향했다. 길은 둘이었다. 위쪽은 나무데크길, 아래쪽은 시멘트길이었다. 딱딱한 시멘트길보단 나무데크길이 좋아 데크길을 걷다 보니 소양강스카이워크가 나타났다. 예전엔 못 보던 것인데 호수 위로 직선 유리길이 깔려 있었다. 바닥을 보니 유리 아래로 물이 넘실거린다. 스카이워크 끝에 이르니 좀 떨어진 곳에서 물고기 조형물이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다시 돌아나오는데 웬 외국인들이 이리도 많은지! 외국인들에게 소양강스카이워크는 단단히 소문이 난 듯했다. 스카이워크를 나와 얼마 안 가니 소양강처녀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전에 이곳에 오면 스피커에서 소양강처녀 노래가 끝없이 반복되어 흘러나왔는데 이젠 아예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구경하는 사람도 없다. 스카이워크에 밀려난 모양이다. 춘천 하면 소양강처녀와 소양강처녀상이 떠올랐는데 이젠 좀 아닌 것 같다.


소양2교를 건넜다. 소양2교는 아치가 인상적이고 10여 년 전 춘천마라톤에 참가했을 때 달리면서 지났던 곳이기도 하다. 춘천에선 꽤 의미 있는 다리인 듯 다리 부근에 소양2교의 내력과 역사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여럿 붙어 있었다. 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소양1교가 있지만 소양1교는 건너본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다.


북쪽으로 걸음을 계속하는데 역시 길은 두 겹이다. 아래쪽은 강가의 시멘트길이고 위쪽은 자전거길인데 자전거길로 걸었다. 이따금 자전거 탄 사람들이 지나갔다. 계속 신매대교 방향으로 걷는데 멀리 신매대교가 보이기 시작하고 가까이에 작은 다리가 하나 나타났다. 고구마섬으로 이어지는 오미교다. 고구마섬은 중도에 비하면 아주 작은 섬이다. 곧이어 오른쪽으로 위락시설이 나타났다. 육림랜드였다. 이곳엔 놀이기구도 많지만 동물원이 있다. 아닌게아니라 거대한 몸집의 새가 몇 마리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독수리로 보였다. 갑자기 날개를 펴니 몸집이 얼마나 큰지 여실히 드러났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어찌나 안쓰럽던지! 야생에 있다면 얼마나 신나게 하늘을 휘젓고 다닐까. 그런데 동물원에 갇힌 신세가 되어 허구헌 날 저렇게 가만 웅크리고 있으니 어찌 마음이 아리지 않을까. 육림랜드를 지나니 신매대교가 나타났다.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꽤나 긴 다리였다. 신매대교는 위도 위에 놓여 있다. 대교 북쪽에는 과연 위로로 내려가는 길이 나 있었다. 위도의 다른 이름은 고슴도치섬이다. 신매대교 위에서 춘천 시내를 바라보며 의암호를 담은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신매대교를 건너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봄내길 4코스인 의암호나들길은 한쪽 끝은 삼천동 봉황대이고 다른 끝은 춘천문학공원이다. 오늘은 춘천문학공원까지 가기로 했다. 신매대교 끝에서도 4km 정도 가야 한다. 자전거길과 겸한 길인데 사람이 별로 없어 한적하다. 자전거든 사람이든 이따금 볼 수 있을 뿐이다. 점점 문학공원이 가까워지니 기나긴 데크길이 시작되었다. 의암호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봉의산이며 소양2교 그리고 춘천대교를 호수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느낌은 아주 색다르다. 어언 춘천문학공원에 이르렀다. 출발한 지 4시간 가까이 지났다. 거리는 10km 좀 넘었다. 시간만 넉넉했다면 오던 길로 되돌아 춘천역까지 걸어갈 수 있었지만 도저히 그럴 형편은 되지 않는다 싶어 여기서 걸음을 멈추기로 했다.


길 건너 카페로 들어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아서 갖고 온 접이식 키보드를 꺼내 스마트폰과 연결했다. 그리고 밴드에 사진을 올리고 몇 마디 설명도 붙였다. 카페 직원에게 버스가 자주 오냐 물으니 한두 시간에 한 대 온다고 했다. 예상대로였다. 키보드를 다시 말아 가방에 넣고 카페를 나와 길 건너 정류장으로 가 버스를 기다렸다. 30분 이상 기다렸을 것이다. 서면3번 버스가 오길래 냉큼 올라타고 쉽게 시내로 들어왔다.


우리나라에 도농복합도시가 여럿 있다. 도시와 그 주변의 농촌 지역이 행정구역상 통합된 형태의 도시를 말한다. 주변의 농촌 지역도 시에 속하게 되다 보니 00시 00면이 많다. 춘천시 동면, 춘천시 서면도 그런 예다. 그런데 말만 춘천시지 이들 면에는 대중교통이 자주 다니지 않는다. 배차 간격이 참으로 길다. 농촌에서도 다들 자가용이 있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버스가 자주 다닐 필요가 없다. 그러니 여행자들만 죽을 맛이다. 00과 00의 차이가 이토록 극명할 수 있는지 번번이 놀란다. 아마 춘천만이 아니고 전국 도농복합도시가 다 그럴 것이다.


다행히 춘천역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상봉역 가는 전철에 올랐다. 이번 달에만 벌써 두 번이나 춘천에 왔다. 봄내길은 무려 8코스까지 있으니 다 돌아보려면 몇 번을 더 와야 하는지 모른다. 춘천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엇보다 번잡하지 않고 어디든 평온하다는 것이다. 마음의 평정을 절로 얻는다. 신매대교를 지나 춘천문학공원으로 향하는 길엔 왼통 온갖 작물이 자라는 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 너머엔 이름 모를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다음엔 하중도, 상중도, 고구마섬에도 들어가보고 싶다. 어디서든 잔잔한 호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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