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밭

'십대'는 단어가 될 수 없나

사전에 드는 의문

by 김세중

<두려움 없는 마음>(하루헌)이라는 책을 읽었다. 티베트 사람인 툽텐 진파가 영어로 썼는데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읽었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번역서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번역서는 독해가 어려운 문장이 곳곳에 들어 있는 게 보통이다. 원어와 한국어의 언어 차이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원어의 문장 구조에 충실하게 번역을 하면 한국어가 어색하고 한국어가 자연스럽게 번역하면 원어 문장이 손상되기 십상이다. 번역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두려움 없는 마음>은 이 책이 과연 번역서인가 싶을 만큼 한국어 문장이 자연스럽게 읽혔다. 반역자의 능력이 참으로 돋보이는 책이었다. 번역자가 영어도 잘하지만 한국어 실력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두려움 없는 마음>에 무척 감탄했는데 엉뚱한 곳에서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외래어 표기띄어쓰기였다. 저자 툽텐 진파는 티베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인도로 가서 살아야 했다. 많은 티베트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툽텐 진파는 인도에서 티베트 사람들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만났고 탁월한 영어 능력을 인정 받아 달라이 라마의 영어 통역을 맡아 온 이인데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유학했다. <두려움 없는 마음>에서 외래어 표기가 이상했던 것은 이 Cambridge를 한결같이 캠브리지라 한 것이다. 케임브리지가 아닌가. 미국의 한 주인 앨라배마알라바마라 했다.


띄어쓰기에서는 조사 을 앞에 오는 말과 띄어쓴 점, 조사 보다를 역시 앞말과 띄어쓴 점이 이상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필자를 당황하게 했던 것은 십대라는 말을 십 대로 띄어쓴 것이었다.



필자는 십대라는 말을 띄어쓴 걸 이제까지 본 기억이 없다. 십대는 늘 붙여쓴 것만 봐 왔다. 당연히 십대는 붙여써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에는 십대십 대로 적혀 있었다. 띄어써져 있었다. 이유가 궁금했다. 역시 사전이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니 십대라는 말이 없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십대는 단어가 아니다. 두 단어다. 두 단어니 십 대로 띄어써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나 십대라는 말은 이미 1950년대부터 널리 쓰여 왔던 말이다. 한 예로 1958년 1월 25일 경향신문 사설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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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신문은 온통 한자투성이였으니 한자로 쓰면서 十 代라 띄어쓸 리는 만무했고 十代라 붙여쓰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자로 쓰든 한글로 쓰든 십대는 언중들의 머릿속에 한 단어로 인식되지 않았을까. 십대 하면 열 살에서 열아홉살까지의 사람 아닌가. 그들을 일컫는 단어가 필요하지 않은가. 그게 바로 십대 아닌가.


2025년이 되도록 지금까지 표준국어대사전은 십대라는 말을 표제어로 올리지 않았다.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도 당연히 없다. 그러나 이런 말은 신문이나 사람들의 글에서 단어로 사용되어 왔다. 단어로 사용돼 온 말을 국어사전은 외면해 온 것이다. 그 결과 출판물에서 띄어쓴 십 대가 나타났고 읽는 이를 당황하게 한다. 국어대사전을 유심히 뒤져 보면 듣도 보도 못한 말들이 참 많이 올라 있다. 이런 말이 국어에 과연 있나 싶은, 생소한 말들이 수도 없이 많다. 아마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또 써보지 못할 말들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십대, 이십대처럼 일상에서 늘 쓰는 말이 국어사전에 없는 경우도 있다. 이 심한 괴리를 줄여 나가야 한다. 그래야 국어사전이 참다운 국어사전 구실을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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