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명품숲이다
광릉수목원이 국립수목원으로 이름이 바뀐 게 1999년이란다. 그러나 내겐 아직도 광릉수목원이 더 귀에 익으니 내가 얼마나 옛날사람인지 알겠다. 포천에 있는 국립수목원을 10년 만에 찾았다. 분명히 2015년에 간 기억이 나니 10년 만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이에는 간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오늘 왜 국립수목원을 갔나. 일전에 한 유튜버가 올린 국립수목원 소개 영상을 보고 하루빨리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광릉수목원은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갈 수 없었다. 그 기억이 뿌리박혀 있었는데 그 유튜브 영상에서 이젠 그렇지 않다니 어찌 가지 않을 수 있으랴. 더구나 지하철 4호선이 진접까지 연장되어 대중교통으로 가기도 한결 수월해지지 않았는가.
4호선을 타고 오남역에서 내렸다. 버스를 탔는데 그만 잘못 탔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걸 깨닫고 급히 내려 길을 건너가 버스를 탔다. 그러느라 시간을 좀 지체했다. 부평교 다리를 건너 버스에서 내렸고 그때부터 걷기 시작했다. 봉선사까지 간 다음 거기서 다시 국립수목원까지 가는 거다.
그런데 처음부터 잘못했다. 광릉수목원로를 따라 봉선사로 가는데 차도로 걷기 시작한 거다. 차도 말고는 길이 없는 줄 알았으니 차도로 간 건 당연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차도 말고 멋진 길이 따로 있었다. 북부순환자전거길이 도로와 나란히 나 있음을 한참을 걸은 후에야 알았다. 아슬아슬하게 차를 피해 걸으며 혼자 투덜댔는데 이리도 근사한 길이 있다니! 북부순환자전거길은 자전거와 보행자가 같이 다녀도 좋을 만큼 널찍했다. 더없이 안전한 길이었다. 그 진입로를 부평교 부근에서 찾았어야 하는데 못 찾고 위험하게시리 차도로 한참을 걸었던 것이다.
뒤늦게야 북부순환자전거길로 들어서서 안전하게 봉선사까지 갈 수 있었다. 봉선사도 오랜만에 와 본다. 이렇게 큰 절인 줄 예전엔 잘 몰랐다. 너무 오랜만에 와서 그럴 것이다. 연못엔 연꽃이 두둥실 피어 있고 곳곳에 서 있는 석불은 이곳이 오랜 고찰임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봉선사에서 국립수목원으로 넘어가는 산길이 있는 줄 알고 산길 입구가 어디 있나 한참을 두리번거렸으나 찾지 못했다. 유튜브에서 본 기억으로는 봉선사에서 수목원으로 산길이 나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대로변에 국립수목원 가는 데크길이 있었다. 그걸 모르고 절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산길을 찾았으니 단단히 헛짚었다. 뒤늦게 찾은 데크길은 걷기가 아주 편안했다. 발로 나무를 딛는 느낌이 좋았고 무엇보다 경사가 없이 평평했다. 꾸준히 걷다 보니 봉선사천 너머에 광릉 입구가 보였고 거기서 좀 더 가니 드디어 국립수목원 정문이었다.
예전엔 미리 예약한 사람만 입장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일까. 꽤 사람들로 붐볐다. 다리를 건너니 넓은 길이 시작됐다. 너무 오랜만에 오는 거다 보니 국립수목원의 전체 윤곽이 그려지지 않았다. 지도가 붙어 있었으나 금세 파악될 리 없다. 길이 워낙 얼기설기 나 있어 어디부터 가야 할지 막막했다. 산림박물관으로 일단 목표를 정했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별로 사람을 보지 못했다. 박물관 안에는 관람객이 많았지만... 가족 나들이 온 이들이 많았다. 부부가 어린 아들 셋을 데리고 왔는데 다섯 식구가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산림박물관을 나와서 수생식물원쪽으로 나왔다. 봉선사 연못에도 놀랐지만 국립수목원 수생식물원 연못에도 연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곳곳에 피어 있는 산수국은 실로 화사하기 그지없었다. 어찌 이리 꽃 핀 모습이 오묘한가. 볼 게 너무 많아 오늘 다 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큰 줄거리만 파악하고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 싶었다. 육림호로 향했다. 유튜브에서도 육림호를 추천했다. 한참을 걸어 육림호에 다다랐다. 숲속에 큼직한 연못이 자리잡고 있었다. 역시 수련이 연못을 뒤덮고 있었다. 잉어 같은 물고기들도 연못 속에서 노닐고 있었고....
카페가 있기에 들어가 물을 한 병 사 먹고는 침엽수림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전나무 숲이 있었다. 하늘을 향해 거목들이 쭉쭉 뻗어 있었다. 장관이었다. 점점 경사가 가팔라졌다. 다행히 길이 포장이 돼 있어 그리 힘들진 않았다. 한창 걷고 있는데 어딘가 낯익은 장면이 나타났다. 10년 전 이곳에 왔을 때 호랑이를 보고 깜짝 놀랐었는데 그 호랑이가 있던 사육장이었다. 지금은 호랑이가 없다. 봉화의 백두대간수목원으로 옮겨갔단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한참을 걸어내려오니 정문이 가까워졌다. 다시 매표소 앞으로 왔는데 이렇게 두 시간 가량 수목원을 걷고 나서야 비로소 전체적인 윤곽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오늘 안 간 곳이 많다. 무엇보다 열대, 난대 온실을 가지 않았다. 다음에 오면 온실을 봐야겠다. 그리고 수생식물원 지나서도 볼 것이 있지만 가지 않았다. 육림원 아래쪽 지역도 역시 안 갔다. 그러나 큰 둘레길은 한 바퀴 돌았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감을 잡았으니 됐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원 없이 걸을 수 있는 곳이 포천의 국립수목원이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국립수목원은 정말 잘 보전되어 있다. 과연 손색없는 명품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