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순환 산책로가 있다
참으로 오랜 세월 지하철 4호선은 당고개(불암산)가 종점이었는데 몇 해 전 진접까지 연장이 돼 여간 편리해지지 않았다. 별내별가람, 오남, 진접 이렇게 겨우 세 역이 새로 더 생겼을 뿐이지만 서울 북동쪽으로 가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최근에 국립수목원에 가느라 두 번 오남역에서 내린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오남저수지를 가기 위해 오남역에서 내렸다.
호수는 어디든 발길이 끌린다. 얼마 전 파주와 양주에 걸쳐 있는 마장호수를 즐기고 왔는데 오늘은 남양주의 오남저수지를 찾았다. 미리 살펴보니 호숫가로 산책로가 잘 나 있는 듯했다. 실망할 일이 없을 거라 믿고 길을 나섰다. 오남역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저수지까지 2~3km는 되니 의당 버스를 타고 갈만하지만 그깟쯤이야 버스를 기다리느니 걷는 게 차라리 편하다. 그만큼 걷는 데 익숙해졌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나 낮 최고 35도가 예고된 날씨에 터벅터벅 걷는 게 그리 발걸음이 가볍진 않았다. 해는 뜨거웠고 공기는 습했으니. 30분 이상 걸었으리라. 오남초등학교 앞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구시가지였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이 2025년이 맞나 싶을 만큼 가로 정비가 안 돼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도 앱을 켜서 드디어 저수지 바로 아래에 이르렀다. 드넓은 주차장이 있었고 화장실도 있었다. 저수지 제방길은 공사중이라 다니지 못한다는 알림판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우회해서 저수지 수면이 보이는 곳에 올라서자 갑자기 경관이 달라지며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눈앞에서 분수가 하늘을 향해 뿜어져 솟구치고 있었다. 마치 춤을 추듯이 치솟는 물줄기는 변화무쌍하게 하늘로 치솟았다. 그런데 이 장관을 보는 사람이 나 말고는 거의 안 보인다. 이 멋진 장면을 말이다. 20여 년 전 일산에 살 때 일산호수공원에서 음악에 맞춰 뿜어져 나오던 분수를 본 이래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호숫가를 따라 산책로는 잘 나 있었다. 더구나 이중이었다. 위로는 이따금 자동차도 지나는 숲길이 따로 있었다. 쉬임 없이 길이 휘어져 지루할 틈도 없었다. 어느새 반환점 가까이에 이르렀다.
산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 있어 올라가 보았다. 산길로 이어지는 계단이었다. 쉼터가 있어 걸터앉아 휴식을 청했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주변에 그득했다. 앉아서 쉬는데 서늘한 바람이 어찌나 싱그러운지 도무지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에어컨 바람이 주는 그 써늘한 불쾌감을 이 자연의 소나무 그늘 아래서는 조금도 느낄 수 없다. 에어컨도 이런 순도 높은 쾌적한 바람을 내뿜게 할 수는 없을까. 누가 그런 에어컨을 발명하진 못하는 걸까. 아쉬움을 안은 채 계단을 내려와 다리를 건너 출발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건너편 산책로도 잘 이어져 있었다. 도중에 달의 정원이란 곳에는 초생달 모양 조형물과 함께 쉼터가 있었다. 왼편으로는 호텔처럼 보이는 건물과 상당한 규모의 음식점, 카페도 있었다. 그리고 제방이 눈앞에 나타났다. 공사중이라며 못 가게 막아 놓았는데 데크칠한 것이 마를 때까지 통행을 막은 듯했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오남도시숲 입구는 찾지 못했다. 그건 다음으로 미룬다. 다시 오남초교 부근에 이르렀고 하천과 나란히 난 도로를 따라 오남역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10.7km를 걸었다.
확실히 오남호수공원은 저평가돼 있는 듯 보인다. 훌륭한 산책코스이건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하다. 남양주시가 워낙 크긴 하지만 남양주시 오남읍에 있는 오남호수공원은 순환산책로로 아주 근사하다. 제방 아래에는 널찍한 주차장도 있다. 한 바퀴가 4km가 좀 못 되니 한두 시간 산책하기로는 그저그만이다. 혹할 정도의 빼어난 경관은 없다 해도 이렇게 호젓한 산책로가 호수 둘레에 나 있는 데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분수가 없었다면 심심할 뻔했는데 멋진 분수가 있어 탄성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