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 평화주의자
달라이라마는 티베트 종교·정치의 최고 지배자 또는 교주를 이르는데 살아 있는 부처라고 불린다. 지금의 달라이라마는 제14대로 지난 7월 6일 90세 생일을 맞았다. 그는 1935년생으로 법명은 텐진 갸초이다. 그는 1940년 2월 달라이라마에 즉위했다. 그때 겨우 4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직접 통치할 수 없었고 상당 기간 섭정에 의존했다. 돌이켜 보면 1933년에 제13대 달라이라마가 세상을 떴기 때문에 약 7년 가까이 달라이라마는 부재했었다. 올해 90세인 제14대 달라이라마가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 다음 달라이라마는 누구인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자기들이 다음 달라이라마를 정할 권리가 있다고 하고 있고 달라이라마는 이를 강하게 부정한다. 어떻게 결말이 날지 자못 궁금하다.
필자는 달라이라마의 자서전인 달라이라마, 티베트 민족의 대변자의 한국어 번역서의 원고를 읽을 귀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 책은 원제가 Voice for the Voiceless로 부제는 Over Seven Decades of Struggle with China for My Land and My People이다. 가까운 시일 안에 출판될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의 원고를 읽으며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됐고 가슴이 뭉클했다. 아직 원고를 반밖에는 읽지 않았지만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 적지 않았다.
1950년 하면 우리는 6.25를 떠올린다. 한국전쟁이 그해 6월 25일 발발해 3년 이상 계속됐다. 민족사의 비극이었다. 그런데 1950년은 티베트 민족에게도 가슴 아픈 일이 있었던 해였다.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쏠려 있던 틈을 타 중국은 그해 10월 티베트를 침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1950년 10월은 티베트인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시기였던 것이다.
티베트는 그 옛날 토번이라 했다. 8세기에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였고 심지어 당나라 수도 장안을 점령한 적도 있었다. 티베트 문자는 8세기에 인도 문자를 본떠 만들어졌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티베트는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인데 어쩌다 중국에 점령당했나. 몽골도 중국과의 관계를 놓고 볼 때 티베트와 비슷하지만 몽골은 일찌감치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데 반해 (비록 내몽골은 중국에 복속됐지만) 티베트는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안타깝다.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했을 때 달라이라마는 불과 15세였다. 1950년대 내내 그는 티베트의 자주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그가 10대 후반, 20대 전반이었을 때다. 그가 상대했던 인물들을 돌아보면 그가 얼마나 어린 시기에 세계적 거물들과 만나 티베트 독립을 호소했는지 알 수 있다. 네루, 인디라 간디,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등이 그들이었다. 1959년 그가 스물네 살 때 중국과 티베트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티베트 민중은 봉기했고 중국 당국은 좌시하지 않았다. 군사적 조치를 감행했다. 결국 달라이라마는 티베트 수도 라싸를 탈출하지 않을 수 없었고 6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국 티베트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도에서 망명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고향과 고국이 얼마나 그리울까.
1989년 노벨상위원회는 달라이라마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그해 6월에 베이징에서는 천안문사태가 발생해 민주화를 요구하던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얼마나 죽었는지도 모른다. 티베트의 독립을 끈덕지게 가로막은 마오쩌둥, 저우언라이는 이미 1976년에 세상을 떴다. 티베트 문제를 놓고 달라이라마와 오래 대화했던 덩샤오핑도 1997년에 사망했다. 후진타오도 상당 기간 티베트자치구 당서기로서 티베트 문제를 직접 담당했는데 달라이라마와 만난 적은 없지만 양측이 대화채널은 유지했다 한다.
원고를 읽으면서 놀란 게 있다. 달라이라마가 비폭력을 신봉하는 평화주의자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 정도에서 그친 게 아니었다. 달라이라마는 극단적 노선을 배격했다. 평생 중국과 맞서 왔지만 중국인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왔다. 그리고 티베트의 독립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다만 티베트의 자주권은 중국 정부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달라이라마의 주장이고 요구였다.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일부로 살아가면서도 티베트인들의 고유한 문화, 습속, 종교를 지켜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이마저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아가 달라이라마가 티베트 독립을 전혀 포기하지 않았다고 거짓 선전했다. 그래서 더 이상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아직도 달라이라마는 티베트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달라이라마를 위협적 요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만주족은 한때 청나라를 건국한 주체였지만 그들의 언어를 다 잃어버렸다. 한족에 동화되어 만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토번, 즉 티베트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언어, 문자, 종교, 문화를 다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한족을 꾸준히 티베트에 이주시켜 티베트의 색채를 지우려 한다. 이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1959년 이래 티베트를 떠난 많은 티베트인들이 인도를 비롯해서 네팔, 부탄, 유럽, 미국 등에서 살고 있다. 티베트인들이 티베트로 돌아갈 그날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