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접근 방안은 독립이 아니라 자치를 추구한다
달라이라마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데 <달라이라마, 티베트 민족의 대변자> 한국어 번역본 원고의 나머지를 읽었다. 그리고 달라이라마의 생각을 좀 더 잘 알 수 있었다. 그는 일평생 티베트와 티베트인을 대변하며 살아 왔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었나. 왜 그는 1959년 티베트를 탈출한 이후로 아직까지 티베트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나. 왜 중국 정부는 달라이라마를 여전히 적대시하고 있나. 이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 찾았다.
내가 보기에 달리아라마는 일평생 정직하게 살아 왔다. 정직을 최우선적인 신조로 삼아 일관된 노선으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어 왔다. 그의 노선은 이른바 중도 접근 방안이었다. 이에 따르면 달라이라마는 티베트의 국가로서의 독립을 추구하지 않는다. 중화인민공화국 안에서 티베트가 자치권을 보장받아 자치하는 것이었다. 국방, 외교는 중국 정부에 맡기되 언어, 문화, 종교, 생태는 티베트인들이 자치하겠다는 것이다. 달라이라마는 이 중도 접근 방안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이는 티베트인들 중에서도 너무 온건한 방안이라 해 지지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한다. 그러나 달라이라마는 이를 고수해 왔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달라이라마를 티베트 독립을 추구하는 중심 인물로 간주해 탄압해 왔다. 이를 보여주는 중국 정부 당국자의 발언은 노골적이다. "달라이 라마는 승복을 입은 늑대이며,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짐승의 심장을 가진 악마이다. ...... 우리는 지금 달라이 집단과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으며, 적과 생사를 건 전투를 벌이고 있다."
달라이라마는 과연 중국 당국자로부터 이토록 저급한 비난을 들어야 할 만큼 부도덕하고 부당한 행태를 보인 적이 있나. 없었다고 생각한다. 중국 당국은 오직 달라이라마가 두려울 뿐이다. 그래서 이토록 터무니없는 비난을 퍼부으며 대화와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달라이라마는 티베트의 최고 지도자로서 티베트인들에게 중국인들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늘 역설했다. 한 대목을 옮기면 이렇다. "나는 우리의 투쟁 대상은 중국 인민들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 지도부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우리는 중국 국민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상처를 주는 행동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원고를 읽으며 두 군데 대목에서 울컥하고 놀랐다. 하나는 이렇다. "명백한 진실은 이것이다. "나는 중국인이다."라고 말하는 티베트인은 아무도 없다." 티베트인은 아무도 자기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때의 '중국인'은 아마 '한족'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가 아닌가. 티베트인은 스스로를 티베트 민족이라 생각하지 한족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티베트인들의 민족의식이 투철함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다른 하나는 소련 브레즈네프에 관한 언급이었다. 이렇다. "이 단순한 사실 덕분에 러시아인이 아닌 사람들도 새로운 국가에 쉽게 일체화가 될 수 있었고, 스탈린이나 브레즈네프처럼 러시아인이 아닌 사람도 소련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깜짝 놀랐다. 스탈린이 러시아 민족이 아니라 조지아 민족임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브레즈네프까지 러시아 민족이 아님은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과연 찾아보니 브레즈네프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계 아버지와 우크라이나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단다. 적어도 소련 시절에는 공산당이 소수 민족을 탄압했던 것 같진 않다. 그랬다면 어떻게 스탈린이나 브레즈네프가 소련 최고 권력자가 됐겠는가. 그러나 소련은 1991년 해체됐고 무려 15개 국가로 쪼개졌다. 중국은 아마 소련의 붕괴처럼 티베트, 신장위구르 등이 독립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달라이라마를 이토록 완강하게 티베트 '독립'을 추구하는 위험한 인물로 몰아세우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