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가리켰는데 손가락만 본 것 같다
나는 2022년에 <민법의 비문>, 2024년에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를 펴내서 우리나라 법조문의 문장이 비문(非文)투성이임을 알리고 이는 하루속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쳤다. 그러나 아직껏 입법권을 가진 국회나 관계 정부 당국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들은 법조문이 아무리 엉망진창이어도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하다. 아예 관심이 없거나 애써 외면하거나 아닌가 싶다.
그런 가운데 어제 나는 두 책과 관련해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책을 읽고 저자인 내게 몇 가지 말할 것이 있다고 했고 이메일로 내용을 보내주기로 했다. 과연 몇 시간 뒤 메일이 왔다. 수도권에 사는 70대라고 한 그분은 두 권의 책을 다 읽었고 읽어도 여간 세밀하고 꼼꼼하게 읽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조사 하나 누락된 것까지 지적해 주었으니 말이다. 일테면 필자의 책에 "국립국어연구원의 남기심 원장 업무협약을 맺었고"라는 대목이 있는데 "국립국어연구원의 남기심 원장과 업무협약을 맺었고"라야 하는데 조사 '과'가 누락되었다는 것이었다. 옳은 지적이고 필자의 실수였다. 아직도 그걸 모르고 있었는데 귀중한 지적을 해주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한편으로 다른 지적도 같이 하였는데 그 하나는 <민법의 비문>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법학을 공부한 분들로서"라는 대목의 일제강점기는 피해야 할 용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피해야 하는 이유로 든 것이 2015년 10월 30일, 그리고 2025년 7월 11일 조선일보 기사였다. 두 기사는 일제강점기라는 말이 북한이 미제강점기(미군정기)와 짝을 이루는 말로 쓰는 용어라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제강점기가 마땅하지 않으면 미제강점기만 안 쓰면 되는 것이지 북한이 일제강점기라고 한다고 해서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쓰면 안 되나? 그럼 뭐라고 해야 하나?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일제시대라고 했다. 그럼 일제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일까. 겨우 35년을 '시대'라 하는 것이 적절한가? 한 신문의 기사를 이토록 굳게 따를 줄은 미처 몰랐다. 더구나 대안도 없지 않은가. 일제강점기 말고도 남북이 공통적으로 쓰고 있는 용어는 상당히 많을 것이다. 북한이 쓰는 말이니 우리는 피해야 한다는 논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한 시기를 줄여서 일제강점기라 한 것이고 달리 무슨 표현이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한 가지 지적도 필자를 당혹케 했다. <민법의 비문> 머리말에 서울법대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것을 문제삼았다. 서울대법대라야지 서울법대는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서울에 있는 여러 대학에도 법대가 있는데 그냥 서울법대라고 하면 어느 대학교 법대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서울대라는 학교명 자체가 틀렸다. 서울에는 수많은 대학교가 있는데 왜 서울대학교가 그 이름을 쓰느냐고 할만하지 않은가. 그러나 서울대라는 이름을 문제삼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서울법대라고 하면 누구든 서울대법대임을 안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필자는 위 독자의 편지를 읽고 솔직히 당황했다. 필자의 두 책은 단 하나의 오류도 있어서는 안 될 우리나라 법조문에 숱하게 많은 비문법적인 문장이 있음을 지적한 것이고 그렇다면 그 주장에 대해 어떤 의견이 있을 줄 알았다. 동의한다거나 아니면 나는 달리 생각한다거나. 그러나 책의 주된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이 책의 주장과는 아무 관련 없는 주변적인 문제에 대해서만 지적해온 것을 보고 뜨악했다. 법조문의 비문에 대한 필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그랬을까. 법조문의 비문에 대한 필자의 견해에는 조금도 토를 달 게 없었다면 다행이다.
필자의 책을 토씨 하나까지 살펴서 지적해준 독자가 있음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그분께 깊이 감사한다. 그러나 필자가 기대하는 것은 대한민국 법체계의 기본을 이루는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 등의 법조문에 숱하게 들어 있는 비문들은 시급하게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는 것이다. 법조문에 문법 오류가 득실득실하다는 게 말이 되나. 이러고도 문명국가라고 할 수 있나.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는데 손가락만 보고 손가락에 대한 이야기를 한 거 같아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아마도 필자의 필력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