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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 2제

말은 완전하지 않다

by 김세중

한 신문의 기사 제목에 "소비쿠폰이 부른 비극... "왜 네 것만 사" 망치 든 아빠 딸 위협"이란 게 있었다. 아빠가 망치로 딸을 위협했다고 해서 아빠는 30대나 40대, 딸은 10대나 그 이하겠거니 했다. 아니었다. 아빠는 80대고 딸은 50대였다. 꽤 당황스러웠다. 아빠는 유아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즉 아빠는 어린 자녀가 아버지를 부르거나 가리키는 말로 알고 있었는데 50대 딸도 아버지를 아빠라고 해도 되는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국어사전에서 아빠를 찾아보면 유아어라는 정보는 보이지 않는다. 예전엔 분명 그런 정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혼란스럽다. 필자의 언어감각으론 아빠는 노인과 잘 안 어울린다. 80대면 노인 아닌가. 딸도 50대면 어린애가 아니지 않나. 연령대도 연령대지만 아빠 하면 자녀를 어여삐 여기는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려지고 느껴진다. 아빠라는 말에는 다정함이 있다. 그런데 소비쿠폰으로 아버지인 자기를 위한 물건은 안 사고 딸이 저에게 필요한 물건만 샀다고 딸에게 망치를 들었다니 더욱 아빠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그럴 땐 의당 중립적인 아버지라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말하면 필자의 언어관, 호칭관이 너무 까탈스럽거나 진부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떻든 필자 생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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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일컫는 말과 관련해 다른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해본다. 머지않아 출간될 예정인 달라이라마 자서전 번역본의 원고를 읽다가 이런 소제목을 보았다. "1992년 9월 11일, 덩샤오핑 주석과 장쩌민 주석에게 보낸 서한에 첨부된 참고 사항"이었다. 여기서 덩샤오핑 주석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2년 뒤인 1978년에 중국의 최고 실권자가 된다. 그리고 개혁개방 정책을 강력히 펼쳐 나갔고 중국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런데 덩샤오핑은 1978년부터 1983년까지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을 지냈고 1981년 6월 28일부터 1989년 11월 7일까지는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위를 맡았다고 한다. 그랬을 뿐 덩샤오핑은 국가주석이나 당 총서기를 지낸 적이 없다. 그러나 생전에 실질적인 최고지도자로 인정받았다. 요컨대 1990년에는 이미 주요 직함을 다 내려놓았고 장쩌민이 최고 권력을 행사했다.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1992년 9월 11일 덩샤오핑 주석에게 보낸 서한이란 대목이다. 1992년 9월에는 이미 덩샤오핑은 뒤로 물러나 있을 때였다. 주석이 아니었다. 그랬는데도 덩샤오핑 주석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지냈으니 그때의 직함을 은퇴한 후에도 붙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이 이미 죽은 지 오래지만 우리가 그렇게 부르듯이 말이다. 말하자면 이미 주석이 아니지만 의례적으로 그를 예우해서 주석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겠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2년 9월 11일, 덩샤오핑 주석장쩌민 주석에게 보낸 서한은 어딘가 어색함이 느껴진다. 덩샤오핑 주석의 주석은 의례상 주석이고 장쩌민 주석은 실제 주석인데 서로 다른 주석이 나란히 있어서다.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는 필자도 마땅한 대안은 내놓지 못하겠다. 덩샤오핑 동지라고 하나 덩샤오핑 최고지도자라 하나 아니면 그냥 직함 없이 덩샤오핑이라고만 하나. 한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말은 완전하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 꼭 맞는 말이 잘 안 찾아질 때가 있다. 덩샤오핑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의문을 제기해 본다. 국어사전에는 호칭(呼稱)이란 말만 있고 호칭(號稱)이란 말이 없다. 호칭(呼稱)은 주의를 끌기 위해 직접 상대방을 부르는 말로서 남을 가리키는 말인 지칭(指稱)에 대응된다. 호칭(呼稱)지칭(指稱)을 아우르는 말은 없나? 그것이 바로 호칭(號稱)이 아닐까 싶은데 국어사전에는 호칭(號稱)이란 말 자체가 없다. 단지 칭호(稱號)만 있다. 이 글의 제목으로 쓴 호칭칭호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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