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에 홀린 것만 같다
신문의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싱어롱 상영을 보고서다. 싱어롱이라... 분명 sing along일 텐데 그게 어찌 싱얼롱이 아니고 싱어롱인가.
한 인공지능에 물었다. sing along은 싱어롱인가 싱얼롱인가 하고...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이 인공지능의 답변은 가히 횡설수설이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sing along은 singer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er'과 '-or'은 '어'로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라느니 '-er'에 해당하는 'g'의 발음이 '어'로 표기된다느니 했기 때문이다. singer long이 아니라 sing along인데 왜 '-er'이 나오느냐 말이다. 또한 '싱어'가 아닌 '싱어'도 말이 안 된다. '싱거'가 아닌 '싱어'라면 몰라도 말이다.
결정적인 것은 along이 왜 '얼롱'이 아니라 '어롱'이냐이다. 만일 alone, alike 같은 영어를 한글로 옮긴다고 가정하면 어론, 어라이크라 할 것인가 얼론, 얼라이크라 할 것인가. 물으나마나 얼론, 얼라이크라 해야 하리라. 그런데 왜 along은 얼롱이 아니라 어롱인가. 불가사의하지 않나.
외래어 표기법에 [1]이 모음 앞에 올 때에는 'ㄹㄹ'로 적는다는 규정이 있다. 다음과 같다.
이 규정 때문에 스라이드가 아니고 슬라이드다. 크린이 아니고 클린이다. 또 바란스가 아니고 밸런스다. 일본어에 익숙한 세대는 스라이드, 크린, 바란스가 좋았겠지만 1986년에 고시된 외래어 표기법은 슬라이드, 클린, 밸런스 쪽을 택했다. 그래야 r과 l을 구별해서 적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한 저명한 국어학자는 생전에 [l]을 'ㄹㄹ'로 적는 것에 아쉬움을 표한 적이 있었다. 그냥 'ㄹ'로 적는 게 낫지 않냐는 거였다. 필자는 일본어에 익숙한 세대가 'ㄹㄹ'을 꺼리는 것으로 이해했었다.
그런데 21세기도 무려 25년이 지난 지금 [l]을 'ㄹㄹ'이 아니고 'ㄹ'로 적는 사례가 나타났으니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있나. 요즘 젊은 층은 일본어에 익숙해서 sing along을 싱어롱이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본어에서는 'ㄹㄹ'이 불가능해도 한국어에서는 얼마든 'ㄹㄹ'이 가능하지 않나. 그런데 왜 싱얼롱이 아니고 싱어롱인가. 이 괴상한 회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치 귀신에 홀린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