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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를 생각한다

'너댓'은 비표준어고 그래서 철자 오류?

by 김세중

어제 한글날을 맞아 한글에 대한 생각을 브런치에 썼다. 한글은 문자인데 언어라고 하니 안타까운 심정을 글에 담았다. 그런데 글을 올리기 전 브런치에서 맞춤법 검사를 해보니 '너댓 살'의 '너댓'에 빨간 줄이 그어지지 뭔가. '너댓'은 철자 오류니 '네댓'으로 바꾸기를 권했다.


c.png '너댓'은 철자 오류라 했다


뜻밖이었다. 살아오면서 이날 이때까지 '너댓'만 들었지 '네댓'을 말하는 사람을 못 들어봤고 나 역시 '네댓'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내 머릿속에 '네댓'은 없었다. '너댓'만 있었다. 그런데 어찌 브런치는 '너댓'이 철자 오류이고 '네댓'이 맞다고 하나?


역시 답은 국어사전에 있었다. 국어사전에 '너댓'을 찾으니 '네댓'으로 가라고 표시돼 있었다. '네댓'이 표준어고 '너댓'은 비표준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다른 놀라운 사실은 '너덧'이란 말도 '네댓'과 같이 표준어이고 뜻은 같았다. 그러니까 '넷이나 다섯쯤 되는 수'라는 뜻으로 표준어는 '네댓'과 '너댓'이고 '너댓'은 비표준어라는 것이었다. 나는 사전에 비표준어라고 돼 있는 '너댓'만 알고 있었고 '네댓'과 '너덧'은 들어보지 못했다. 더욱이 그게 표준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직관만이 옳다고 할 수는 없겠다. 내가 편향될 수도 있고 내가 만나본 사람들이 한정돼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내 직관은 무조건 틀렸다고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내 비록 지방에서 태어났지만 이미 서울에서 산 지가 55년이나 되지 않았나 말이다. 그래서 대중의 사용 경향을 알아보기로 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들어가서 1920년부터 1999년까지 신문기사에서 '네댓', '너덧', '너댓'을 각각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네댓'은 709건, '너덧'은 153건, '너댓'은 772건이었다. 국어사전에 비표준어라 돼 있는 '너댓'이 가장 많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내가 '네댓'을 바른 말로 알아온 것이 근거가 없지 않았다.


물론 신문기사 출현 빈도가 대중의 언어 사용 경향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라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느 정도 흐름을 짐작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셋이나 넷'을 나타내는 말은 '너'이다. 아예 '네'는 사전에 언급조차 돼 있지 않다. 실제로 '세네'라고 쓰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셋이나 넷'은 '너'가 표준어인데 '넷이나 다섯'은 '댓'이 표준어이고 '댓'은 표준어가 아니라는 건 근거가 뭘까. 혹시 사전의 무도한 횡포는 아닐까.


'너댓'이 표준어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표준어의 경직성에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내게 익숙한 '너댓'만 표준어고 '네댓', '너덧'은 비표준어라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그럼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된다. 말을 표준어, 비표준어로 무 자르듯이 나누지 않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표준어, 비표준어 같은 말 자체를 안 쓰면 어떨까. 안 써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닐까. 내가 늘 써왔던 '너댓'이 철자 오류라고 하니 너무 황당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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