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 오늘 미국에 좀 다녀올게

미국/캐나다 국경을 넘는 방법

by 손지혜

"어딜 간다고?"

늦잠 자던 딸아이가 눈을 뜨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미국"

"왜?"

"넥서스 인터뷰 보려고"

"그게 뭔데?"

"미국하고 캐나다 입국심사를 쉽게 해주는 프로그램으로서..."


2023년에 신청하고 11개월 만인 작년 8월에야 인터뷰하라는 이메일이 날아왔는데, 그동안엔 외국에 갈 일도 없고 겨울에 국경까지 운전하고 싶지 않아서 이제서야 길을 나섰다. 국경 통과하는데 얼마가 걸릴지도 모르겠고, 가는 길에 주유소도 들러야 해서 가방에 태블릿과 무선 키보드까지 챙겨 넣고 한두 시간 일찍 도착할 작정으로 출발했다. 기름도 넣을 겸 들르려던 코스트코는 고속도로에서 출구를 놓쳐 패스! 직접 운전해서는 처음으로 미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것도 여행이라고, 심지어 외국여행이라고 괜히 들떴던 마음이 멀리 성조기가 보이기 시작하자 진정되었다.

넥서스 소지 차량은 왼쪽, 버스는 오른쪽

앞뒤로, 옆으로 퀘벡과 뉴저지 번호판을 단 차들이 줄을 서 있었다. 줄은 두 줄이어서 차 한 대씩 심사가 끝날 때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조금씩 움직였다. 꼬박 50분 가까이 지날 때쯤 겨우 내 차례가 왔다.


"어디 사세요?"

"몬트리올이요."

"무엇 때문에 가는 건가요?"

"넥서스 인터뷰가 있어요."

"인터뷰 시간은?"

"1시 20분입니다."

그러자 그는 세관신고할 물품이 있느냐는 질문만을 마지막으로 던져놓고 길을 가리켰다.


캐나다와 미국을 잇는 국경 사무소들 중에 샹플렝 국경은 몬트리올에서 미국 뉴욕으로 갈 때 이용하는 길목이다. 캐나다의 15번 고속도로가 국경을 지나 뉴욕주로 들어가면 미국의 I-87번 고속도로가 되고, 그 길을 다섯 시간쯤 쉬지 않고 달리면 뉴욕에 도착한다. 거기에 캐나다의 퀘벡주와 미국의 뉴욕주, 버몬트주에 걸쳐 남북으로 길게 놓여있는 호수이름이 바로 퀘벡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뮤엘 드 샹플렝의 이름을 딴 샹플렝이다. 여기보다 더 복잡한 캐나다/미국 국경은 아마도 시애틀과 밴쿠버 사이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가장 바쁜 캐나다/미국 국경은 위니펙과 디트로이트란다. 사람보다는 화물이 주로 다니겠지만. 미국/멕시코 국경과는 다르게 미국/캐나다 국경은 대체로 평화롭다. 그래도 두 나라의 경계선이니까 지나는 데는 긴장감은 어느 정도 있다. 몇 달 전에는 버몬트 주의 국경 근처에서 미국측 수비대 한 명이 시신으로 발견된 일도 있었다.


국경을 지나자마자 인터넷이 안 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무 문제 없이 내비게이터가 떴다. 게다가 43번 출구는 놓칠래야 놓칠 수가 없는 구간에 있었고 길은 하나였다. 남들 갔을만한 길을 따라 남들 주차해 놓은 차들 사이에 차를 놔두고 허허벌판에 어색하게 서있는 건물에 들어갔다.


흑인과 백인 두 청년이 어리버리 들어서는 나를 빙긋이 웃으면서 맞았다. 지금 문을 안 열었으니까 앉아서 기다리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친구들 표정에 이렇게 한국어 자막을 이렇게 붙이고 싶어졌다.


"어서 와, 넥서스 인터뷰는 처음이지?"


집에서 챙겨온 미국 동전을 들고 자판기를 들여다 봤지만 기분탓인지 너무 달아보이는 음료수들이 사이즈마저 커보였다. (그럴리가?)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가면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것이 햄버거와 콜라컵 사이즈였던 생각이 나서 뭘 마시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집을 나선지 두 시간만에 나는 미국에 있었다.


겁은 많은데 호기심도 많은 나는 핸드폰 사용을 금지한다는 푯말과 제복을 입은 남자들에 주눅이 들면서도 입구의 작은 공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온통 미국이었다. 미국 국기, 미국의 경찰, 또는 국경수비대?, FDA...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의 물건을 발견한다. 9/11 당시무너졌던 무역센터 건물의 한 조각이 놓여 있었다. 미국은 외국의 침략을 경험해 본 일이 거의 없다. 있다면 일본의 진주만 공습 정도? 그러니까 9/11은 미국인들에게 여러모로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뉴욕에서 가져온 작은 쇳덩어리가 국경, 그러니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상징으로 놓인 모습이 내게는 참 생경했다.

한 시가 되기도 전에, 점심시간이 벌써 끝났는지 넥서스 등록사무실이 문을 열었다. 십여 명의 신청자들이 몰려가, 앉을 의자가 부족했다. 여권과 운전면허증을 확인한 뒤 한 명씩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라!"

"알렉산드라!"

"알렉스!"


불러도 대답이 없자 긴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파도타기라도 하는 것처럼 앞에서부터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모두의 시선이 제일 끝에 따로 앉은 내게 몰렸다. 하지만 내 이름이 알렉산드라일 리가 없잖은가? 직원은 사무실 밖에까지 나가서 알렉산드라를 찾아왔다. 의자가 모자라 밖에 나가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몇 명을 부르고 난 후에 직원 아줌마는 고개를 내밀어 나를 콕 찍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대답했다. "You know me!" 그녀도 웃었다. 나는 그 복잡한 사무실에서 유일한 아시안이었다.


넥서스는 미국과 캐나다의 심사를 모두 통과해야 한다. 인터뷰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먼저 만난 미국 심사관은 왜 넥서스 카드를 신청했느냐고 물었다. 차마 에어캐나다 마일리지를 적립하는 신용카드가 신청비를 지원해 줘서.. 라고는 말할 수 없어서 머뭇거리자 그는 중요한 질문이라며 심각한 표정을 보였다. 에라 모르겠다. 요즘 공부를 시작한 미국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보스턴, 필라델피아... 가려고 하는 도시 이름을 대기 시작하자 "오케이 오케이", 그가 얼른 말을 막았다. 그리고 안 그래도 손이 건조해 지문 찍는 데 시간을 낭비한 나를 쫓아내기라도 하듯 여권을 집어들고 일어났다.


별 거 아니라면 별 게 아닌, 미국에 갈 일이 자주 있는 건 아니라도 반은 호기심으로 받아낸 넥서스 카드 인터뷰를 마무리한 보람도 잠시뿐, 하필 요즘의 캐나다-미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타이밍이었다. 육로로 국경을 통과하는 캐나다인의 비율이 23프로인가가 줄었다고 했다. 트럼프 할배는 감히 51주 편입 운운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30일 이상 미국에 체류하는 캐나다인은 등록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다음에 또 미국땅을 밟을 날은 언제가 될지, 유효기간 5년 동안 카드를 이용할 일은 과연 몇 번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꽤 특이한 경험이었고 나름 든든해졌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폭설 속의 4일, 8일,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