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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법원에 출석하던 날

소액재판 후기

by 손지혜

8시 17분, 너무 일찍 도착했다. 3년 전 단열공사 회사를 상대로 낸 소액소송 (small claim)에서 재판이 열리기 전 조정을 위한 미팅(case management conference)이 9시에 잡혀 있었다. 몬트리올 구시가로 가는 길목에, 어울리지 않는 네모 반듯한 현대식 건물 앞에서 나는 새삼 사방을 둘러보았다. 반대편에는 차이나타운의 입구가, 동쪽 멀리로는 대형 대학병원의 신축빌딩이 보였다. 동서양이 섞이고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중심에 내가 서있었다. 몬트리올 법원 (Montreal Courthouse), 보통 사람들은 평생에 한두 번 올까 말까 할 이곳에 매일 드나드는 사람들이 한창 출근하는 중이었다. 방문객은 소지품을 검사하고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막상 들어서자 기관이 주는 중압감에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판사가 상대편을 들면 어떻게 하지?

프랑스어 딸려서 못 알아들으면?

피고가 나오기는 할까?


온갖 걱정 끝에 깨달은 것이 있는데, 내가 피고가 아니라 원고라는 사실이었다.


소송에 걸린 금액은 4천 달러, 적은 돈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다 못 받는대도 머리 싸매고 누울 돈도 아니다. 게다가, 소액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구경할 수 있는 기회에 쓴 비용이 130달러 정도였으니 꽤 괜찮은 딜이었다. 법원의 1층과 2층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젊다 못해 앳된 백인 여성 한 명이, 왠지 여자라고 하면 안 되고 꼭 여성이라고 불러줘야 할 것 같은 그녀가 법복을 입고 빠른 걸음으로 기내사이즈의 검은색 캐리어를 끌고 긴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법복은 검은색 가운으로 목둘레에 흰색 리본이 길게 X자로 걸쳐져 있었다. 캐나다에 오래 살면서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오늘 그 한 컷을 추가했다.


14.10호는 시작하기 15분 전에 미리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법복을 입은 사람들도 하나둘씩 들어왔다. ㄷ자로 정렬된 책상에 가운데는 서기로 보이는 흑인 여성 두 명이, 양쪽에는 변호사인듯한 사람들이 네 명. 가장자리에 원고와 피고가 뒤섞여 열 명 정도가 앉았다. 나는 그중에 피고가 있을 것 같아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몸을 곧추세웠다. 옆에 앉은 이가 얼마나 걸렸냐고 물어서 3년이라 대답했더니 자기는 6년 걸렸다고 한다. 3년 만에 다시 잡혀서 그렇다나. 직원 한 명이 돌돌이에 가득한 서류를 가지고 들어왔다. 3년 묵은 파일들이었다.


판사가 들어서자 모두가 일어섰다. 중년의 백인여성이었다. 사건별 원고와 피고의 출석을 확인하며 유일한 동양인인 내 이름을 조심스레 불렀다. 가운데 높은 자리에 앉은 그녀가 오늘 미팅의 목적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양측의 합의를 위해 중재를 할 것이고, 다음 사람들이 들어오는 11시가 되어도 결론에 이르지 못하면 3-4개월 후에 다시 와야 한다고 했다. 네 팀은 각각 배정된 변호사를 따라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전쟁이 시작됐다.


나는 프랑스어를 할 줄은 알지만 이런 자리에서 실수하고 싶지 않으니 영어를 사용하겠다고 했고 다행히 피고도 받아들였다. 그리고 사건을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 준비한 타임라인을 내놓았다. 요지는 시공회사에서 원래 계약대로 작업을 안 했다는 것이고, 애초에 플랜이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재인은 공사대금의 얼마가 적절했었는지에 초점을 맞춰 질문을 해댔다. 나는 처음 견적과 나중에 반강제로 지불하게 된 영수증, 그리고 단열공사 후에도 전기요금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내놓았다. 그리고 애초에 피고가 제대로 진단했더라면 나는 아예 공사 자체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재인은 단열공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고 피고는 99%의 가정에서는 효과가 있는 방법이었고 견적을 내는 과정에선 잘 몰랐을 수 있다며 변명을 했다.


판을 뒤집어야 한다.


중재인이 지쳐 잠시 쉬자고 제안할 때쯤 나는 피고를 바라보며 질문을 했다.


"왜 견적과 다르게 공사가 되고 있는 걸 내게 알리지 않았죠?"


중재인은 그만 다시 자리에 앉았다. 피고는 모르겠다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RBQ, 즉 퀘벡의 건설분야를 관리하는 기관에 신고한 내용을 내놓았다. RBQ에서 회사에 합의하라고 했다는 기록이었다. 그럼에도 회사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의논하겠다던 직원이 회사로 돌아가서는 2년 워런티 준다고 보낸 이메일을 프린트해 둔 것까지 내놓았다.


"5-6명의 다른 직원들하고 이야기했지만, 모두 '이해한다, 해결해 주겠다' 말하더니 결국 해준다는 게 2년 보증이었습니까? 이건 당연히 있는 거 아닌가요?"


피고는 말을 잃었다.


"내가 만약 아시안이 아니었다면, 젊었다면, 남자였거나 남편이 있었다면 이렇게 무시하지는 않았겠죠."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재판으로 간다고 해도 더 받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어요."

중재인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는 1200달러를 제안했다. 피고도 받아들였다. 나는 잠시 생각해 본 후에 오케이 했다.


"더 이상 감정소모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금액이 중요하진 않아요."


중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휴대용 캐논 프린터를 꺼내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피고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잠시 화장실에 가겠다며 나섰다. 중재인은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건 난데, 급하지 않았나 보죠." 하며 웃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프랑스어로 바뀐 그는 훨씬 편안해 보였다.


"베트남인이세요?"

"한국이요. 제가 베트남 사람이면 불어를 더 잘했겠죠."


그가 웃었다. 동글동글 사람 좋은 인상의 백인 아저씨 변호사 에티엔은 아직 아이들은 학생인지, 뭘 공부하는지 소소한 질문들을 던졌다.


"C'était une expérience spéciale. Première fois, et j'espère que...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처음이었고, 바라건대..."까지 말하자 그가, "dernière fois(마지막이기를?)"이라고 응수했다.


우리는 판사 앞으로 가서 다시 한번 주소와 이름을 확인했다.


"Félicitations! I am pleased for you!"


판사로부터 따뜻한 축하의 말을 영어와 불어로 들은 나는 피고와도 악수를 나누고 (형편없는 짓을 한 건 그의 회사 다른 사람들이니까) 아이처럼 들떠서 길을 나섰다.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잘했다고 해주고픈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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