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의 퀘벡여행 1
캐나다의 시골길이 얼마나 오지인지를 가늠하는 나만의 기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도로 표지판이 사슴 주의인지, 순록 주의인지를 보는 것이다. 시골길을 다녀볼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은 나로서는 순록 표지판은 기념품 상점에나 나와있는 거였으니 실제로 본 것이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순록을 본 것도 아니고 순록 출몰지역 경고판이 말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고속도로는 짝수번호는 동서로, 홀수는 남북으로 향한다. 그래서 몬트리올의 북쪽의 40번 고속도로와 남쪽 20번 고속도로는 동서를 연결하고 있다...라고 운전을 배우기 시작한 딸아이에게 설명을 했는데 아무 대답이 없다. 그러고 보니 같은 말을 전에도 두 번쯤 한 것 같다. 화내지 않아 줘서 고맙다. 몬트리올 섬을 나와 퀘벡시티로 향하는 20번 고속도로에는 운전하기 딱 적당할 만큼의 차들이 달리고 있었다. 퀘벡에서 운전하는 건 어렵지 않다. 미국처럼 속도제한이 마일로 표시되지도 않고, 영국처럼 핸들이 반대인 것도 아닌 데다가 톨게이트 하나 없다. 표지판이 프랑스어긴 하지만 STOP 대신 ARRET라고 쓰여있대도 빨간색의 육각형을 못 알아보면 바보. 저 멀리 남쪽으로 우뚝 솟은 산이 보였다. 아이에게 저긴 미국이라고 알려주었다. 방향으로 보아 버몬트주였다.
"산이 많은 버몬트엔 낙농업이 발달되어 있단다. 버몬트가 Vert Mont, 초록색 산이란 뜻이잖니? 저기 벤 앤 제리 아이스크림 공장도 있는데 나중에 한 번 가볼래?"
"아니"
금방까지 이렇게 가까이에 미국이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던 딸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진이나 찍어달랠걸...
편도 2차선 주변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 그러면 야생동물 주의라도 있을 법한데 평지인 데다 큰 도시 사이의 길이니까 순록은커녕 토끼도 보기 힘들다. 생 히아신스니 드로몽빌 같은 소도시들이 띄엄띄엄 있을 뿐 휴게소조차 없다. 맥도널드 표지판이 보이길래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맥모닝과 커피를 사 왔다. 아직 갈 길이 두 시간이나 남았다. 길가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많아졌다. 온도계가 영하 3도에서 4도, 5도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스쿨버스다!"
자동차나 중장비 공장이 고속도로변에 있는 건 우연일까? 아니면 홍보일까? 수없이 늘어서 있는 노란 스쿨버스가 3시간 운전길의 가장 큰 볼거리라는 건 참 너무하다. 생로랑 강 북쪽 40번 고속도로는 시간이 약간 더 걸리는 대신 강이 가까워 풍경이 좋다지만 나는 GPS가 가리키는 대로 무미건조한 20번 도로를 얌전하게 따라갔다. 2차선으로 가다가 트럭이 나오면 추월하는 지극히 모범적이고 단순한 운전을 보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강을 건너 퀘벡으로 들어서는 순간 다리가 나왔다. 아주 오래된 철교, 퀘벡 교(Pont de Quebec)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퀘벡교가 완공된 것은 1919년의 일이라고 한다. 당시로서는 987미터나 되는 길이의 다리를 건설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던지 두 번이나 공사 중에 무너져서 백 명에 가까운 작업자가 목숨을 잃었다. 지금도 양쪽 끝으로만 지지되는 다리로서는 가장 길다. 그 역사적인 다리를 힐끔힐끔 보면서 옆의 새 다리를 건너자 구불구불 작은 강변도로가 나를 퀘벡시티로 안내했다. 손을 내밀면 만져질 듯한 강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언덕으로 올라가 보니 퀘벡의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잠든 아이를 깨웠다.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성곽도시 퀘벡의 구시가의 좁은 돌길에는 당연하게도 주차가 어렵다. 하지만 보스턴의 커먼처럼 넓은 지하주차장이 있어서 차를 가지고 가더라도 큰 곤란은 겪지 않는다. 나는 공영주차장 SPAQ의 입구를 금방 찾았다. 힐튼호텔 앞, Youville 광장 옆에 있는 SPAQ d'Youville은 6층 규모의 큰 주차장이지만 언덕 안에 지어져 있어서 1층, 4층, 6층의 출입구 외에는 (6층에는 사람만 드나들 수 있음) 땅 밑에 있다. 하루에 $20이니까 관광지 치고는 주차비도 큰 부담은 안 되는 데다 구시가 안에서는 걸어서도 충분히 다닐 수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출입이 자유로운 3일권은 직원에게 문의해야 한다)
그렇게 호텔과 컨벤션 센터 중간에 주차를 하고 밖을 나와보니 칼바람이 무자비하게 몰아쳤다. 춥고 배고픈 퀘벡여행의 첫날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몬트리올에서 퀘벡으로 가는 디른 방법으로는 기차와 버스가 있다. 기차는 시내의 보나방튀르 (Bonaventure) 지하철역과 연결되는 몬트리올 중앙역에서, 버스는 지하철 베리위캄 (Berri-UQAM)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탈 수 있다. 둘 다 퀘벡에서 내리는 장소는 같다. 퀘벡 구시가 바로 옆에 있으니까 내려서 걸어가 10분이면 충분히 구시가 중심까지 갈 수 있다. 단, 퀘벡 성 안쪽은 천혜의 요새라는 거, 다시 말하면 언덕 위라는 거. 그 길을 올라가다 보면 처음 마주치는 건물이 오뗄 듀(Hôtel-dieu)다. 이름을 보고 오해하면 안 된다. 호텔도 아니고 종교시설(dieu가 신이란 뜻)도 아닌 1637년에 처음 문을 연 북미지역 최초의 병원이다. (몬트리올에도 같은 이름의 병원이 있는데 캐나다 최초의 간호사 잔 망스(Jeanne Mance)가 1645년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