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 주민의 겨울나기
교교하다
그 표현이 왠지 마음에 들어서 다시 내뱉었다. 교교한 겨울밤.
뒤뜰의 소복이 쌓은 눈이 교교하고 우아하고 은은한 달빛을 받아 하얗게 반사하는 중이었다.
차가운 하늘을 가르고
펄펄 내려서
소복이 내리는 눈
그런 단어들을 잊은 지 얼마나 된 걸까.
뽀독뽀독 새 눈을 밟고 나가는 즐거움은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의자를 돌려 밖을 내다보았다. 설거지와 빨래와 바닥에 널린 잡동사니와 먼지를 외면하고 오늘은 내게 주어진 저 풍경을 즐기기로 했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20여 년의 캐나다 생활 중 최악의 폭설이 될 줄은. 날씨로 직장도 문을 닫아 그렇게 조용하고 긴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캐나다의 겨울에도 우기가 있었던가, 35센티의 폭설이 내린 지 불과 나흘 만에 그보다도 더 많은 눈이 내렸다. 덕분에 몬트리올 대부분의 학교는 주말을 지내자마자 또 휴교령을 내렸고 도시는 속절없이 눈으로 가득 찼다. 길거리에 주차된 차들은 된장에 박아놓은 고추처럼 줄줄이 눈더미에 갇혀있는 가운데 시내버스들이 운행시간과 전혀 관계없이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차를 포기하고 집을 나섰다. 걸어서도 40분이면 갈 거리를 55분에 걸쳐 대중교통으로 출근했다. 인도가 없어진 곳이 대부분이어서, 차도가 눈과 차, 사람들로 복잡했다. 2차선 도로가 1차선 도로가 되고, 왕복차선에선 가는 차량과 오는 차들이 뒤엉켰지만 어차피 차선은 보이지도 않았다. 우편물 배달은 늦어지고 쓰레기와 재활용 수거작업은 아예 멈춰서 곳곳에 검정 쓰레기봉투가 흰 눈 옆에 쌓여 있었다. 몬트리올 시장은 앞으로 제설작업이 열흘은 더 걸릴 것 같다며 밤낮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인터뷰를 했다.
제설차는 일주일 만에 나타나 주차장 앞에만 살짝 눈을 밀어주고 가버렸다. 그것만으로도 차가 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 무척 감사한 일이다..라고 생각했다.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때까지는. 추운 날씨엔 배터리가 더 금방 방전된다는 걸 잊고 있던 탓이다. 쌀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꼬드겨 큰 애를 눈 속에서 차를 꺼내내는데 동원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도로 집으로 들어와 친구에게 구조신호를 보냈다.
폭설이 내린 지 8일
드디어 우리 집 앞길에도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캐나다 동부에서 제설작업이라는 것은 트럭에 눈을 쓸어 담아 가져가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장비가 동원돼도 한 번 폭설이 내리면 동네 골목까지 치우는데 일주일이 꼬박 걸린다. 길가에 주차된 차들은 깃발이 꽂힌 날에도 그대로 남아있으면 견인되어 버렸다.
어릴 적 기억하는 겨울은 눈은 빗자루로 쓰는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스노 블로우어를 작은 사이즈로 (큰 건 무거우니까) 사두고도 정작 큰 눈엔 효과가 없어서 크고 작은 삽 세 자루로 겨울을 났다. 올해는 눈이 많이 안 온다 생각했다가 크게 뒤통수를 맞고 나니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삽질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은퇴를 한 몬트리올 사람들 상당수는 겨울이면 남쪽나라로 갔다가 봄에 돌아온다. 그들을 남에서는 '스노버드(Snowbird)'라고 부른다. 철새의 일종이라고나 할까. 플로리다에 아파트를 사두고 겨울을 보내는 사람들이 올해는 미국에서 철수하고 있다는 뉴스가 떴다. 요즘 플로리다에 나오는 매물 중 30%가 캐나다인 소유라는 것이다. 캐나다 달러의 가치가 낮아지면서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캐나다 달러는 미국 달러와 거의 맞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77%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대놓고 캐나다를 엿먹이고 있으니 반미감정이 커져서 여행객조차 줄고 있는 판국이다.
그럼 어디로 가면 좋을까? 점점 은퇴나이는 늦춰져서 65세였던 연금 지급시기가 67세가 된다니 일을 그만두어도 될 나이는 아직 멀기만 한데, 마음속으로는 치앙마이로, 코스타리카로, 리스본으로, 발리로, 아니면 한국으로, 2월 날씨는 어떤지, 비행기는 몇 시간이나 걸리는지 찾아보느라 쓰잘데기 없는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캘리포니아는 큰 화재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플로리다는 걸핏하면 허리케인으로 난리, 일본은 지진, 한국은 미세먼지로 고통받고 있으니 눈 때문에 며칠 불편했다고 이십여 년을 살아온 몬트리올을 떠날 핑계로는 궁색했다. 더구나 처음 나흘은 오히려 모처럼의 큰 눈에 평화로운 여유를 즐기지 않았었나. 마냥 예뻤다가, 지긋지긋해졌다가, 눈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몬트리올 날씨만큼이나 변덕스러웠다. 하여간 봄은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