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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오모테섬의 호시노 리조트 호텔

캐나다 주민의 일본여행기

by 손지혜

"오츠카레사마데시다!"


일본의 최남단 오키나와 현에서도 대만에 가까운 작은 섬 이리오모테에 배가 내리자 호텔에서 마중 나온 직원들이 인사를 했다. '잘 오셨습니다'도 아니고 '환영합니다'도 아닌 '수고하셨습니다'라니.

"아이고,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같은 느낌의 인사를 받고 보니 여기가 일본의 최남단 섬 중 하나라는 게 실감이 났다.


이시가키에서 아침 8시 첫 배로 한 시간 가까이 걸려 찾아간 이리오모테섬의 우에하라 항구는 아주 작고 소박했다. 게다가 장마철인 6월의 섬은 아직 여름휴가철을 준비하는 중이라 조용했다. 이시가키에서 항구에 딸린 시설은 작은 매점 (매점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가게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하나와 주차장뿐. 더 볼 것도 없이 셔틀에 올라 호텔로 향했다.


2024년에 창립 110주년을 맞은 호시노 리조트에는 몇 개의 브랜드가 있는데,


가장 고급스럽고 전통적인 대표 브랜드 호시노야


모던하고 지역 특색을 살리지만 아직 럭셔리한 카이 (界)

액티비티를 중시하는 가족단위 손님들을 위한 니조나레

도심지에 자리 잡은 오모 (OMO)

젊은 사람들이 주 고객인 BEB (OMO와 BEB는 시설 등급에 따라 뒤에 숫자를 붙인다)

그리고 최근에 생긴 산 호텔 LUCY까지


그런데 60개가 넘는 호시노의 호텔 중에 이리오모테는 '기타'에 속한다. 홈페이지에 보면 몇 개 안 되는 '개성적인 시설들'로 분류해 놓았다.


이리오모테는 참 묘한 섬이다. '일본의 갈라파고스'라는 별명과 호시노 리조트의 명성만을 보고 찾아간 그곳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오지였다. 호텔까지 가는 길에 호텔 직원은 이 섬에 택시도, 편의점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택시는커녕 10여분 동안 지나가는 자동차도 한 대 못 봤다. 더구나 장마철이었으니까 뭔가 '실례합니다'라고 하면서 들어가야 할 것 같은 그런 섬. 지나는 길에는 파인애플처럼 생긴 뭔가가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길가에 아무렇지도 않게 파인애플 무인가판대가 서 있다. 오키나와도 처음인 내가 이시가키를 거쳐 이리오모테까지 들어갔다. 긴 여행 중간에 찍는 쉼표 같은 그 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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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은 적당히 낡고 은근히 온화하다. 우리가 체크아웃하는 날부터 며칠은 문을 닫는다고 했으니 아마 여름 성수기를 위해 새 단장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후덥지근한 여름나라에서 건물은 쉽게 나이 드는 법이니까. 자연스럽게 열대의 리조트를 떠올렸지만 왠지 모르게 다르다. 그 이질감이 무엇인지 호텔방에 들어서 테라스에 나가보고서야 깨달았다. 나무가 다르다. 야자수 일색인 동남아나 중남미의 휴양지와는 다르게 온갖 종류의 나무가 쭉쭉 위로 뻗어 있었다. 이리오모테 호시노 리조트의 대부분 방은 3명이 잘 수 있도록 데이베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2층 침대가 있는 객실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맨 꼭대기층이라는 거였는데, 이곳에조차 바다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매일 비가 오는 계절에 습기를 피해 위층을 선택한 건 잘한 일이었다. 그리고 4층의 위력은 뜻밖에도 천둥번개가 몰아치던 어느 밤에 바라볼 수 있었다. 개구리인지 두꺼비인지, 아니면 맹꽁이인지 모를 울음소리가 숲 전체에 맹렬하게 울려 퍼졌고, 번개가 내리꽂을 때마다 숲의 실루엣이 번뜩이는, 오래 잊히지 않을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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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앞 숲으로 들어가는 탐험을 하기로 했다. 낮에는 바쁠 것 같아서 (왜?) 가장 늦은 시간으로 신청한 건 큰 실수였다. 아직 낮인데도 숲은 막 활동을 시작한 모기들의 세상이었다. 스프레이를 뿌려도 뿌려도 끝이 없는 전쟁 속에 가이드의 설명은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 내 일본어가 제법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나무며, 풀이며, 벌레까지, 내 일본어 단어의 한계를 훌쩍 넘었다. 기껏 넓은 잎새가 토토로에서 우산처럼 쓰고 나왔던 거라는 이야기 정도 알아들으면서 가이드께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잘은 몰라도 굉장한 지식을 열정적으로 전해주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꽤 먼 길을 걸은 것 같은데 들어간 바로 옆길로 나왔다. 숲 속을 둥글게 돌았던 것이다.


수영장 옆을 지나 작은 숲길로 들어가면 호텔의 전용 비치가 나온다. 그 작은 해변이 주는 고즈넉한 느낌이 좋아서, 호텔에서 빌려주는 의자를 들고 종종거리며 내려가곤 했다. 이곳의 백미는, 해가 지는 섬(이리오모테지마)답게, 일몰이었는데, 아쉽게도 사흘 내내 구름만 보고 왔다. 그래도 그 구름에 깃드는 청회색이 예뻐서 스파클링 와인을 홀짝거리며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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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과 산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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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의 도착하면서 맞아주었던 것도, 로비는 물론 오나가나 보게 되는 것도 다 야마네꼬, 삵의 한 종류라는 희귀 동물의 모습이다. 백 마리 정도, 이리오모테 섬에서만 서식하는 걸로 알려진 희귀종이 마스코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하는 야마네코는 귀여운 인형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리오모테의 명물 애플 파인애플 모자를 쓴 아기고양이. 그 야마네코가 사실은 섬에 천적이 없는 사냥꾼이라는 이야기는 그래서 흘려듣고, 혹시라도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길을 가다가도 기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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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달고 맛있는 파인애플을 따러 농장에 갔다. 남들은 돈 받고 하는 일을 우리처럼 돈을 내고 체험하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는지, 파인애플 따러 간다며 신이 난 작은 아이와 어쩔 수 없이 따라간 내가 유일한 손님이었다. 하필 일요일이어서 원래 일하는 사람들도 없는 빈 밭 한가운데, 가슴께까지 오는 작업복을 입고 추적추적 내리는 보슬비를 맞고 서있는 우리에게 아주머니가 작은 낫을 내밀었다. 아이는 도망가지도 못하는 파인애플을 한 마리 잡아 높이 들었다. 아주머니는 잘했다고 칭찬을 한 마디 던져주고는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섰다. 바보 엄마가 된 나는 연방 사진을 찍으며 생각했다.


'네가 즐거우면 되는 거지, 아가. 생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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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리조트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라면 하나밖에 없는 레스토랑의 한정된 메뉴였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건강식 느낌이기는 한데 저녁은 가격에 비해서는 단순하고, 점심은 저렴하지만 타코라이스와 카레라이스 두 가지뿐이다. (둘 다 여주가 고명으로 올라간다) 첫날 근처 식당에서 오키나와 명물이라는 타코라이스를 먹고 난 후라서 약간 당황했지만 맛은 꽤 좋았다. 카레에 삼겹살이 떡하니 올라가 있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섬이니까 해산물을 실컷 먹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돼지고기가 오키나와 현에서 유명한 음식이라니. 제주도에서도 흑돼지가 유명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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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한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비로소 호텔에 어떤 사람들이 묵고 있는지 보였다. 레스토랑에는 백인 가족과 우리 외에는 모두 일본인이었다. 호텔에 손님이 별로 없었던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이것이야말로 호시노의 고객서비스를 보여주는 것이었을까? 미처 아이 생일케이크를 주문하지 못한 우리에게 호텔에서 작은 선물을 내왔다. 조각케이크를 예쁘게 담은 접시에 초컬릿으로 써놓은 생일축하의 글. 그 따뜻한 정성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좋은 휴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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