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주민의 일본여행기
9월이지만 아직 여름, 하지만 도쿄 디즈니랜드는 가을 분위기를 꾸며보려고 애써 호박장식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불과 일주일 전에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더위에 쓰러질 뻔했던 기억에 이만하면 되었다, 가을의 시작이라고 인정해 주고 내려선 마이하마역에 백설공주가 보였다. 보통의 디즈니랜드라면 성인이 코스튬을 입고 입장하는 걸 막았겠지만 할로윈 축제가 열리는 9월 중순부터 10월 말일까지는 누구나 공주가 될 수 있다. 젊은 친구들이 둘씩, 셋씩, 아니면 대여섯 명이 우르르 옷이며 머리띠(필수!)를 하고 다니는 모습이 즐겁다.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 둘이 예쁘게 옷을 맞춰 입고 걸어가 남자애들 둘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아마도 첫 만남인듯한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너넨 학교 안 가니?' 묻고 싶기도 한 나는 언제 벌써 50대가 되었던가?
역에서 디즈니씨까지는 미키마우스 손잡이가 달린 열차를 타고 가야 하지만, 디즈니랜드는 슬쩍 걷다 보면 미키마우스 동상이 우리를 맞는다.
"이렇게 작은 거였어?"
그랬었구나, 미키마우스는 원래 생쥐였지. 그렇게 생각하면 쥐치고는 크지 않나? 디즈니랜드에서만큼은 미키가 호스트라는 걸 새삼 받아들이면서 무심코 말했다.
"이렇게 생겼었구나"
그러자 딸은 "우리 작년에 온 거 여기 아닌데"
"알아, 작년은 디즈니씨였지. 디즈니랜드에 온 건 아주 오래전, 네가 태어나기 전에"
아이는 꼬마 유령모양의 머리핀을, 나는 크리스마스 악몽의 여주인공 샐리를 장착하고 파크에 들어섰다. 옛날엔 입구에서 종이로 된 표를 사고 들어갔지만 요즘은 미리 예매도 해둬야 하고 유튜브라도 찾아보며 나름 공부도 해야 한다. 그래도 하루에 다 돌아보기란 쉽지 않다. 도쿄 디즈니랜드는 20년도 훨씬 전의 기억이지만, 그 후에 올란도에 가봤으니까 어트랙션은 대부분 낯설지 않았다. 제일 인기 있는 미녀와 야수부터 찾기로 했다. 찻잔을 타고 너울너울 흘러가며 보는 스토리에 흠뻑 빠졌다.
9월 17일에 디즈니랜드는 할로윈 페스티벌을 시작했다. 그래서 가게에서 파는 기념품이나 간식이 할로윈 테마로 장식돼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할로윈 퍼레이드가 화려하다. 롤러코스터를 못 타는 우리는 이 날 퍼레이드 세 개를 모두 보았다. 그리고, 헌티드 맨션! 일시적으로 몇 달만 이곳을 크리스마스 악몽 테마로 운영한다고 해서 앱으로 미리 예약하고 들어갔는데 앞으로 아예 크리스마스 악몽관으로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좋았다. 그런데 왜 1월까지 하는 거지? 생각해 보니 크리스마스 악몽은 할로윈 영화이자 크리스마스 영화니까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계속해도 문제없겠다.
"왜 처음부터 이렇게 만들지 않았어?"
"헌티드 맨션은 아주 오래된 어트랙션이야. 이게 만들어졌을 땐 크리스마스 악몽은 나오지도 않았단다."
아이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악몽만 해도 30년이 넘은 영화인데 그보다 오래되었다니. 나는 도쿄 디즈니랜드가 미국 외의 다른 나라에서는 처음 지어진 디즈니랜드이고 신데렐라 성이 서있는 파크는 올란도와 도쿄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신데렐라 성이 디즈니의 아이콘이잖아?"
"그렇지, 아마 진짜 디즈니랜드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을 거야"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롤러코스트, 스페이스 마운틴은 문을 닫고 투마로우랜드의 리뉴얼 공사가 한창이었다. 첨단기술을 보여줘야 할 것 같은 투마로우랜드는 오히려 기술의 발전에 밀려 3D 체험라이드인 스타 투어즈마저도 낡은 느낌이 났다. USJ의 미니언 라이드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로.
나는 유령개 '제로'의 인형을 길거리 키오스크에서 발견하고 어깨에 얹었다. 할로윈 파티는 따로 입장료를 받고 저녁에만 운영하는 올란도의 매직 킹덤과는 달리, 도쿄에서는 할로윈 퍼레이드를 낮에 열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선 어두워지자마자 좀비들이 전기톱을 들고 달려들었는데 디즈니랜드의 할로윈에는 아무도 피를 흘리지 않았다. 올란도의 할로윈이 '별로 무섭지 않은 (Not so scary)' 할로윈이라면 도쿄의 할로윈은 '전혀 무섭지 않은' 할로윈이었다. 오렌지 색이 좀 많이 보일뿐, 그 여유로움에 2주 간의 일본여행 막바지를 느긋하게 즐겼다.
나는 도쿄의 디즈니랜드를 세 번 찾았다. 대학생이었던 내가 아버지의 일본 출장길에 따라가 본 디즈니랜드는 눈에 익은 캐릭터들이 일본어로 말을 하는 신기한 나라였다. 하얀 멜빵바지의 직원들이 즐겁게 청소를 하고 누구나 반갑게 인사를 하는 곳, 아빠는 그 분위기에 젖어 슬그머니 딸의 손을 잡았다. 두 번째는 신혼의 신랑과 함께, 그리고 이제 다 키워 데리고 간 막내는 거리낌 없이 내 손을 잡고 다음 어트랙션을 찾아 끌었다. 나는 그 추억이 차곡차곡 쌓이는 그 공간을 뒤로, 오렌지와 퍼플로 물든 신데렐라 성의 불꽃놀이를 마지막으로 게이트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