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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Oct 02. 2023

미시즈 메이즐의 뉴욕

Marvelous Mrs Maisel의 서사

아마존 프라임 오리지널로 방영된 드라마 '마블러스 미시즈 메이즐(Marvelous Mrs Maisel'는 주로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에 뉴욕에 사는 유대인 가족을 중심으로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한 코미디 시대극이다. 미리엄(밋지) 메이즐이라는 한 여성이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성공하는 내용이 주요 줄거리지만, 2차 세계 대전 이후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던 미국 뉴욕의 모습을 엿보는 것에 더불어 거기에서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 드라마에서 뉴욕 맨해튼 각 지역의 특징이 어떻게 그려지는지 들여다보면 뉴욕 여행이 한층 더 즐거워질 것이다.


  어퍼 웨스트사이드


   어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와 어퍼 웨스트사이드(Upper West Side)는 센트럴 파크를 사이에 두고 대략 59번가에서부터 110번가까지의 구역을 말한다. 어퍼 웨스트에는 고급 주택가와 콜럼비아 대학, 자연사 박물관 등이 있고, 어퍼 이스트에는 구겐하임 박물관, 메트로 폴리탄 박물관이 있다. 양쪽 모두 입주가 까다로운 코업에서부터 제복을 입은 경비가 주민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는 고급 아파트까지, 주거환경이  비슷해 보이지만 사는 사람들의 분포가 조금 다르다. 웨스트 쪽이 예술가, 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면 이스트는 전통적인 갑부들의 터전이다.'마블러스 미시즈 메이즐'의 주인공인 미리엄의 아파트는 유대인 인구가 많은 어퍼 웨스트사이드에 있었다.

1900년대 초에 지어진 앤소니아, 호텔이었다가 아파트가 되었다. 1 베드룸에 백만 달러 정도
존 레넌이 살았던 다코다 빌딩, 바로 이 앞에서 총에 맞았다


  미리엄의 아버지 에이브의 성인 와이즈먼(Weissman)은 전형적인 독일계 유대인의 이름이다. 콜럼비아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깐깐하고 고집이 세지만 어린애처럼 순수한 면이 때로 우스꽝스럽게 표현되곤 한다. 그러던 그가 평생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믿음이 흔들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말하길, "내 나이 이제 막 64세가 되었으니 이제 안정적이고 편안해져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마치 교차로 한가운데 서서 모든 것이 거꾸로 뒤집히는 걸 보는 것 같아."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19세기말에 태어나 전화도 라디오도 없이 살았던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의 변화에 대해 토로하기 시작한다. 초로의 네 신사가 서로의 말을 듣는 듯 안 듣는 듯 대화를 이어가는 이 장면을 나는 마블러스 미시즈 메이즐에서 최고로 꼽는다. 아마도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파리로 유학을 갔었을 정도로 부유하게 자란 어머니 로즈는 돈이 필요해지자 친정인 오클라호마에 간다. 실은 로즈는 석유 부자인 친정으로부터 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에이브의 교수월급만으로는 어퍼 웨스트사이드의 고급 아파트를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거기서 로즈는 집안의 남녀차별의 벽을 마주하고 좌절한다. 로즈는 변화하는 딸의 모습에 당황하지만 그로 인해 그녀야말로 새로운 인생에 눈을 뜨게 된다.

법정과 경찰서를 수시로 드나들게 된 미리암

   여성이 사회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는 미리암의 이혼 법정이나 경찰서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왔던 미리암은 편견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당황한다. 너무 순진하고 솔직해서 계속 사고를 치지만 사실은 착하게 말 잘 들으며 살았었던 사람이다. 여자라면 아이 낳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살았지만, 아침저녁으로 손목 발목 사이즈까지 재가며 날씬한 몸매를 유지했지만 그토록 믿었던 반려자가 연필 하나 제대로 못 깎는 여자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렸다.


미리암이 온실 속의 화초였다면 미리암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키운 매니저 수지는 잡초처럼 사는 여성이었다. 침대를 접어야 문을 열 수 있는 반지하 아파트에 살던 수지는 미리암의 집에 처음 가던 날 그 크기와 화려함에 충격을 받았다.

"여기 뭐야? 베르사유라도 돼?"


마블러스 미시즈 메이즐에서 독특한 인물 중에 하나로 소피 레넌이 있다. 펑퍼짐하고 거친 언어를 쓰는 서민 캐릭터로 유명한 코미디언이지만 그건 대중들에게 보이는 캐릭터일 뿐, 미리암이 초대받아 간 그녀의 집은 집사와 메이드가 있는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대저택이었다.


* 마블러스 미시즈 메이즐의 촬영은 콜럼비아 대학 근처 모닝사이드 하이츠에 있는 건물에서 두 채의 아파트를 빌려서 했다고 하는데 지금 시세로 하면 8백만 달러를 훌쩍 넘을 것이라고 한다.


가먼트 디스트릭트 (패션 지구)

이 장면은 Garment District에 있는 19번가에서 촬영됐다

  한편, 의류 공장을 운영하는 조엘(미리엄의 첫 번째 남편)의 아버지 모이쉬는 대학교수인 사돈과의 식사 자리에서 매번 자기가 열세 명의 유대인 목숨을 구했노라고 큰 소리를 치는 것으로 열등감을 해소한다. 아들은 연줄로 어느 회사에 부사장으로 앉히지만 조엘은 자기가 사무실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재능도 없는 코미디언의 꿈을 꾼다. 

  

점차 값싼 인력으로 만들어지는 외국 제품에 밀렸지만, 20세기초 뉴욕의 패션산업은 미국 내수의 절반 이상을 소화해 내는 큰 사업이었다. (이제 브라이언트 파크 근처의 가먼트 디스트릭트는 이름뿐이고 대부분 오피스 빌딩으로 바뀌었다) 19세기말부터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박해를 피해 건너온 유대인들은 옷을 만드는 공장에서 노동을 시작하는 일이 많았다. 이때 뉴욕의 유대인 인구는 본격적으로 늘어서 5백만이 넘어갔다. 


5번가 (5th Avenue)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의 경제활동은 대폭 늘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미리암도 처음부터 코미디언으로 잘 나간 것은 아니었다. 이혼 후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기에 B. Altman이라는 명품 백화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B. Altman은 1989년 문을 닫았지만 지금도 5번가는 삭스(Saks)며 버그도프 굿맨(Burgdorf Goodman), 티파니 등 각종 명품 브랜드와 백화점이 늘어서 있다.) 

 

그리니치 빌리지 (Greenwich Village)

  조엘이 코미디언으로 데뷔할 기회를 잡으려고 드나들었던, 그리고 수지가 미리엄의 재능을 발견한 '가스라이트 카페'는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였다. 뉴욕에는 스타의 꿈을 안고 찾아오는 연예인 지망생이 많았고 그 중심에 그리니치 빌리지가 있었다. 전설이 되어버린 밥 딜런도 이곳에서 노래했다. 미리엄이 얼떨결에 참여하는 집회가 열린 곳도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워싱턴 스퀘어 파크였다. 지금은 땅값이 오르고 올라 평범한 부촌이 되었지만 그리니치 빌리지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었다.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처음 시작된 것도 이 무렵 그리니치 빌리지의 게이바 '스톤월' 사건으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할렘의 아폴로 극장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할렘에는 흑인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슬럼가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이후에도 흑인 주민 수는 아직 많은 편이기는 하나 줄리아나 시장의 범죄 소탕 정책에 힘입어 안전한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맨해튼 전체의 땅값이 올라버려 가난한 사람들이 계속 섬 바깥으로 밀려나는 이유도 있겠지만)

 센트럴 파크 북쪽에 위치한 할렘의 중심가 아폴로 극장을 다이애나 로스, 마이클 잭슨.. 1960년대를 휩쓸었던 수많은 흑인 뮤지션이 거쳐갔다.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수프림스, 어스 윈드 앤 파이어, 템테이션 등등.. 1960년대는 소울 뮤직의 최고 전성기였다. 미리암은 톱스타 샤이 볼드윈의 오프닝 무대를 맡는 행운을 얻게 되면서 더 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뜬다. 


차이나타운에서 만난 메이 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스테파니가 여기에서 메이 린으로 분한다

  미국에 중국인 이민자가 들어온 것은 1800년대 서부로 이어지는 철도를 개발하던 골드러시 시기였다. 하지만 유럽인들을 비교적 쉽게 받아주던 뉴욕의 앨리스 섬에 비해 샌프란시스코의 이민국은 아시아인들에게 엄격했고, 노역은 고되었으나 대우는 부당했다. 1965년에 이르러서야 백인들에 유리하던 쿼터 제도를 철폐하고 본격적으로 중국인들의 유입이 시작되었다.

  조엘은 중국인들로 가득한 낡은 건물에 나이트클럽을 차렸다. 지하에는 중국인들이 불법 도박을 하고 있었지만 순진한 조엘은 세상도 중국어도 몰랐다.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랑스러운 아가씨 메이 린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실패했을 위험한 사업계획이었다.

  

  2017년에 시작해 숨 가쁘게 달려온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2023년 마지막 시즌에 실망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의 완벽한 마무리는 상상하기 힘들 것 같았고, 나이 든 미리암과 수지, 그리고 조엘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제는 뉴욕의 고층 건물이 더 이상 세계최고가 아니지만, 아직도 뉴욕은 세계인의 심장부 같은 도시로 남아있다. 그 뉴욕의 풍경을 그려내 세상에 내놓은 작가와 그 인물들을 연기한 배우들, 고속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미국 뉴욕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낸 제작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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