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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Sep 24. 2023

퀘벡 시골에서 스무디 주문하기

커뮤니케이션은 어렵다

 일단 주문하는 곳을 지나쳤다. 줄 서 있는 차가 몇 대 없어서 생각 없이 따라가다 보니 맥도널드 드라이브 스루의 주문하는 스피커를 못 보고 들어가다가 아차 싶어 우물쭈물 후진기어를 넣었다. 첫 세트를 주문하고 나니 뭐라고 묻는데 못 알아들었다.


캐쉬어: *&%^?

나: ...... 빠르동? (뭐라고요?)

캐쉬어: *&%^?


여전히 모르겠어서 고민하고 있는 사이 뒷자리 몬트리올에서 나고 자란 작은 아이가 외친다. "음료수!" 

아, 오케이. 커피로 주세요. 설탕하고 크림 넣어서 미디엄 사이즈로.


더 큰 시련은 서울에서 나고 몬트리올에서 자란 큰 아이의 스무디를 고르는 문제였다. (평범하게 커피를 마셔주면 안 되겠니)


캐쉬어: Fraise-banane, Bluet, Mangue, Anana, Grenade

큰애: 뭐라고?


다시 말해달라고 할까 그냥 애가 좋아하는 블루베리로 시켜버릴까 생각하는 사이 뒷자리의 작은 아이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과일 이름을 다시 불러줘 또 나를 구해주었다.


서울에서 나고 한 살부터 몬트리올에서 자라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불어학교를 다녔지만 불어가 어렵다는 우리 큰 따님은 하필 브리또를 드시겠단다. (맥머핀으로 통일해 주면 안 되겠니) 영어식으로 '버리또' 있냐고 물어봤더니 침묵이 흘렀다. 혹시나 싶어 '부리또'라고 하자 있다고 해서 주문했다. 


미시간 대학의 오래된 연구에 의하면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은 불과 7%만이 언어(spoken words)에 달렸다고 한다. 38%가 어조 (ton), 그리고 무려 55%가 바디 랭귀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어를 배울 때 사람과 대화하는 것보다 전화통화가 훨씬 어렵다. (물론 전화가 잘 안 잡혀서 잘 안 들릴 때도 있지만)


그런데 내겐 전화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 드라이브 스루여서 주문이 복잡해지면 차를 주차하고 들어가는 편이 낫다. 스피커는 잘 들리지도 않는데 뒤에 다른 차들은 바짝 뒤를 따라오고, 주문받는 사람은 인도계 이민자, 나는 한국계 이민자, 서르 사맛디 아니해서 어떤 날은 설탕 대신 스플렌다를 넣어달랬는데 아무것도 안 넣은 밍밍한 커피를 받기도 했다. 


이 날은 아침 일찍이어서인지 시골 맥도널드라서인지 매장은 닫고 드라이브 스루로만 주문을 받고 있었다. 퀘벡 시골이라 영어도 통하지 않았다. 주문은 복잡하지, 이민자 1.5세인 큰 애는 답답하지, 이민자 2세인 작은 애는 짜증 나지, 뒷자리에 우리 개는 계속 짖지 (두 살에 한국서 와서 영어 불어 통틀어 아는 단어가 '샤워' 밖에 없음)... 그 가운데 이 환장할 커뮤니케이션이 마침내 끝나자 시골 맥도널드 청년 아르바이트생이 쾌활하게 외쳤다. "Passez une belle journée!(좋은 하루 보내세요)" 보이지는 않아도 그의 웃는 표정이 느껴졌다. 짜증 나고 한심해 보일 수도 있는데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넘어가준 그가 고마웠다.


"그런데 아까 음료수 그 사람이 뭐라고 했어?" 물었더니 두 아이 다 모른단다. 'breuvage'도 아니고 'boisson'도 아니고, 분명 b로 시작하는 단어는 아니었는데. 그러니까 작은 아이도 그냥 때려 맞춘 것이다. 뭐 눈치도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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