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지혜 Oct 02. 2023

미들네임 Middle name

세계의 이름 이야기 첫번째

어느 날 같이 일하는 제시카에게 물었다. "미들 네임이 언제 필요한지 알아?"

제시카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몰라, 뭔데?"

아마 외국인이 한국인에게 '너 본관은 어떻게 찾는지 알아?' 하고 물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너한테 화가 나서 풀 네임으로 부르고 싶을 때야"


그녀는 사무실이 떠나가라 웃었다. 그렇다. 서양이건 동양이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은 점차 짧게 부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리즈'가 되고 '베스'가 되고 '베티'가 되고.. 변형된 애칭이 80여 가지에 이른다. '윌리암'은 영국 왕자님이지만 '빌'은 이웃집 아저씨가 된다. 


서양에서 미들 네임은 평소에는 잘 쓰이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지만, 이름을 지어준 부모님이나 때로는 본인 스스로에게 의미가 있으니까 많이들 넣곤 한다. 어머니의 결혼 전 성 (maiden name) 일 수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존경하는 사람을 기리기 위해 쓰기도 한다. (해리 포터는 아들에게 덤블도어 교장의 이름을 first name으로, 스네이프 교수의 이름을 middle name으로 넣어 앨버스 세베레스 포터(Albus Severus Potter)라고 지었다. 존 레넌은 오노 요코와 결혼하면서 자신의 미들 네임인 Winston을 Ono로 바꾸기도 했다. 미들 네임을 포기하지 않고 이니셜로 처리해 쓰는 경우도 있다. 존 에프 케네디나 마이클 제이 폭스처럼. (마이클 제이 폭스의 미들 네임은 앤드류다. 좋아하는 배우 마이클 제이 폴라드를 기리기 위해 J로 바꾸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한국 이름 세 글자를 떼어 써서 '홍 길 동'의 미들 네임이 '길'이 되어버리는 상황도 꽤 있었지만 요즘은 대부분 붙여 쓰는 추세여서 혼란을 줄였다.


한편, 드물게 미들 네임이 더 유명해지는 경우도 있다. 폴 매카트니의 원래 이름은 제임스 폴 매카트니였다.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이름도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지만 J Robert Oppenheimer로 주로 썼다. 


프랑스계의 이름으로 들어가면 복잡해진다. 일단 퍼스트 네임부터가 두 이름의 조합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모든 프랑스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지역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벨기에에서 온 내 친구의 프랑스어 이름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었다.


(퍼스트 네임-대부(godfather)의 퍼스트 네임) + 대모의 퍼스트 네임 + 어머니의 퍼스트 네임 + 어머니의 결혼 전 성 (maiden name) + 아버지의 성(last name)


* 여기서 만약 남성이라면 대모의 퍼스트 네임은 남성형으로, 여성이라면 대모의 퍼스트 네임은 여성형으로 바꾼다. 예를 들어 마리 Marie라는 사람의 대부의 이름이 장 Jean이라면 마리-잔 Marie-Jeanne으로 부를 것이다.


가톨릭의 영향을 받은 유럽의 많은 이들이 Paul이니 Dominique, Joseph, Philippe 같은 흔한 이름을 쓰면서도 이렇게 복잡한 조합 때문에 같은 이름이 나올 확률이 극히 낮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막내딸로 태어나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왕비로 죽은 이 여성의 원래 이름은 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안나 폰 외스터라이히로트링겐 (Maria Antonia Josepha Joanna von Österreich-Lothringen)이다. 


스페인어권의 이름에는 미들 네임은 없지만 아버지 어머니의 성을 다 따르기 때문에 성만 두 개가 된다. 퍼스트 네임도 두 개인 경우가 많아서 이름이 네 개가 있으면 앞에 두 개는 퍼스트 네임, 뒤에 두 개는 패밀리 네임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데 만약 세 개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first name이고 어디부터가 last name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자주 있다. 프랑스어 이름처럼 두 개 이름이 -로 묶여있지도 않고 대체로 길어서 난감할 때가 간혹 있다. 


그래서일까. 캐나다에 살면서 내 이름을 알려줘야 하는 경우, 한국 이름에 대체로 들 난감해하는데, 스펠링으로 불러주면서 이렇게 한 마디 하면 모두 불평 없이 웃으며 받아 적는다. 


"그래도 짧잖아요. (At least it's short)"

작가의 이전글 미시즈 메이즐의 뉴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