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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Oct 03. 2023

40대에 처음으로 '마드모아젤'이라 불렸다

여성에 대한 경칭으로서의 호칭은 '미스(Miss)'는 쓰지 말고 '미시즈(미세스, Mrs)'로 통일하자는 주장의 기사를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결혼여부로 호칭을 달리한다는 것은 성차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업무인 편지나 이메일에는 'Ms.'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에 관계없이 쓴다는 Mx.라는 표현은 아직은 본 적이 없다.


생각해 보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하면 호칭이 달라진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나이에 따라서 구분하는 것도 애매하다.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의 히로인 미스 마플도 할머니가 아니었던가. 더구나 미시즈라고 하면 남편 성을 붙여야 할 것 같다. 그래서 한 때는 '미즈'라는 호칭으로 통일하자는 운동도 있었고 아가씨 같은 아줌마라며 '미시'라는 별칭도 유행했었다. 


불어권에서는 어떨까? 처음 파리를 여행한 20대 시절 나를 당혹하게 만든 것은 '마담(Madame)'이라는 호칭이었다. 게다가 한국에서 마담이라고 하면,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특히 룸살롱에서나 쓰는 단어였다. 하지만 '마담'은 불어권에서 흔히 사용되는 존칭이다. 영어에서처럼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도 쓰이지만 그냥 '마담'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활용도는 넘친다. 영어에서는 '맴(ma'am)'이라고 부르면 상당히 높이는 것이지만 불어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아서 지나가는 여성을 불러 세울 때도 '마담'이라고 말한다. 영어의 'dame'하고도 어원이 같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면 원래는 상당한 존칭이었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dame'이 기사(knight)에 해당하는 작위를 가진 여성에게만 붙여진다. sir의 여성형인 셈이다) 


이제 불어권인 퀘벡주에 살면서 그렇게 '마담'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져 갈 무렵, 나는 40대가 넘어서야 처음 '마드모아젤'이라는 호칭을 들었다. 시작은 대학가였다. 늦은 나이에 등록한 퀘벡주립 대학 옆 커피숍에서는 꼭 나를 마드모아젤이라고 불렀다. 동양인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탓도 있지만 손님 대부분이 학생인 대학가에서 습관적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말투였을 것이다. 학교 안의 세상은 다르게 흘러갔다. 나는 그래서 조카뻘 되는 아이들과 어울려 더 재미있게 수업을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최근 다시 마드모아젤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니 그것은 내 직업 때문이다. 가사도우미나 호텔에서 청소하는 사람들을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maid라고 부르는 것처럼, 비서 일을 하는 나는 아주 가끔 마드모아젤이라고 불린다. 특히 전화통화를 할 때는 내 잔주름이 보일 리 없으니 의례 마드모아젤이다. 이것이 딱히 나를 낮춰보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니 불쾌한 것은 아니다. '아가씨'에서 '아줌마'로 진화한 지도 오래인 내게 뜻밖의 마드모아젤 호칭이 오히려 재미있기까지 했다. 


한 언어의 문화권에서 어떤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란 사전에서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인식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들 사이뿐 아니라 외국어로 인식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관념들까지 천차만별이어서 아마도 유능한 언어학자라면 '마담'이라는 단어 하나로 재미있는 인문학 서적 한 권을 출판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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