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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Oct 23. 2023

성(姓)이 없는 사람들

세계 각국의 이름 이야기 두 번째

한국인 환자가 없는 클리닉에서 사무를 보다 보면 정말로 많은 종류의 이름을 보게 되는데, 가장 난감할 때가 성(family name)이 없는 사람들의 파일을 처리할 때다. 난민 보호 프로그램으로 오는 환자들 중에 간혹 last name이 없어서 보험처리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해당업무를 관장하는 블루 크로스에 전화를 걸어 그쪽에 어떻게 등록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거기에 맞춰야 한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성 대신 X를 넣어 쓴다. 드물게는 성과 이름이 같은 이들도 있다. 아마도 성이 없어서 이름을 반복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주로 인도 등 아직도 계급제도가 암암리에 남아있는 사회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성이 없는 채로 살아가는 이들이 또 있다. 영국의 왕족은 성이 없다고 한다. 아니, 필요에 따라 쓰기도 한다고 해야 하나? 영지의 이름을 따서 웨일스며 케임브리지 같은 지명이 등장하기도 한다. 엘리자베스 2세의 할아버지인 조지 5세에 이르러서는 윈저(Windsor) 궁을 성으로 썼고, 엘리자베스 2세는 남편 필립 왕자의 성과 합쳐 Mouthbatten-Windsor라는 성을 이용하였다지만 기본적으로 영국 왕실이나 다른 유럽 왕가에서 성이라는 건 없거나 유명무실하다. 


윌리엄 왕자의 아들 조지의 출생증명서 신청서를 찾아보았다. 이름은 'His Royal Highness Prince George Alexander Louis of Cambridge'로 적혀 있었다. 아버지 윌리엄의 공식 직함이 캠브리지 공작이기 때문이란다. 조지는 증조할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였던 조지 6세의 이름을 물려받은 것이고 알렉산더는 엘리자베스 2세의 미들 네임 알렉산드라의 남성형이다. 하여간 참 길기도 길다. 


한 사람의 이름 안에는 자녀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기원하는 부모의 마음만 담으면 좋겠는데 때로는 종교와 문화, 그리고 사회적인 지위의 의미까지 온갖 정보를 내포한다. 이름 안에 자기가 다스릴 영지의 이름을 넣는 것도, 부모 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없거늘 성을 가질 자격을 박탈하는 것도 결국은 넓은 의미의 폭력이 아닐까? 그래서 때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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