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지혜 Oct 23. 2023

삼중언어의 도시, 몬트리올

3개 국어 사용자가 늘고 있다

몇 년 전, 통역 일로 몬트리올의 어느 육가공품 공장에 갔을 때였다. 매니저로 일하는 사람이 직원들을 모아놓고 업무 지시를 시작했는데 영어, 불어, 그리고 스페인어로 각각 같은 내용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것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정형사가 열 명 남짓되는 작은 업장을 관리하는 데 무려 3개 언어가 필요한 것이니까. 

캐나다 주요 도시의 3개 이상 언어를 구사하는 인구 비율

2021년 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몬트리올 주민의 무려 23.7%가 3개 국어, 또는 그 이상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2016년 조사에는 21.1%, 2001년에는 16%였으니까 3중 언어 사용자는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의 공식언어인 영어와 프랑스어에 더불어 이민자들이 각기 출신국의 모국어를 구사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특히 영어에 밀려 점차 입지가 줄어드는 불어사용자들을 위해 강화한 퀘벡정부의 이민법 덕분에 불어능력은 신규이민자의 필수적인 조건이 되고 있다. 


캐나다 전체의 공용어가 불어와 영어여서 모든 주가 다 같은 걸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주별로 법으로 정해진 공용어는 각기 다르다. 그리고 불어와 영어를 모두 인정하는 브런즈윅주와는 달리 퀘벡주만은 불어가 유일한 공식언어로 지정되어 있다. 그래서 몬트리올시나 퀘벡정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불어로만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2개 국어 사용자의 수는 훨씬 많다. 이민자 수가 많은 캐나다라는 나라의 특성상, 공용어든 아니든 간에 2개 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비율은 몬트리올이 69.8%, 토론토 56.1%, 밴쿠버 53,1%에 달한다. 그중 영어와 불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2021년 통계로 몬트리올이 56.4%, 토론토 7.4%, 밴쿠버가 6.5%였다. 그러니까 몬트리올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영어 + 이민 전 살았던 나라의 언어 사용자의 비율이 높다면, 몬트리올은 거기에 불어를 추가한다고 보면 대략 맞을 것 같다. 


한 나라의 공용어가 두 개 이상인 경우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스위스는 불어, 독어, 이탈리어를 쓰고, 벨기에는 독어, 네덜란드어, 불어를 사용하지만 사실상 지역 별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 도시에서 불어와 영어가 공존하는 몬트리올과는 다르다. 물론 몬트리올 안에서 생 로랑 (St. Laurent) 길을 두고 서쪽은 영어, 동쪽은 불어사용자의 비율이 높다고는 하지만 도시는 불어나 영어만 할 줄 아는 사람, 혹은 영어와 불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 뒤섞여서 하루에 삼개국어를 다 써야 하는 일이 수없이 일어난다.


인구의 반 이상이 이중언어, 4분의 1 가까이가 3중 언어 사용자라는 건 놀라운 수치인데 실제로 주변을 봐도 3개 나라말을 구사하는 사람이 정말로 많다. 이민자 2세는 말할 것도 없고 이민자 1세대 중에서도 불어를 열심히 배워서 직업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작은 클리닉에서도 페르시아어(이란), 우르두어(파키스탄과 인도 일부 지역에서 사용), 폴란드어, 이탈리아어, 한국어,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까지 통역이 가능해 영어나 불어를 못하는 환자가 와도 곤란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 많은 인구가 다 어학에 재능이 있는 케이스일리는 없고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이 환경에 얼마나 적응해 내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이중언어, 혹은 삼중언어의 사회가 과연 좋은 점만 있을까?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중언어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캐나다 정부에서 사용하는 돈이 연간 24억 달러라고 한다. (미화로 약 17.5억 달러, 2012년 기사니까 지금은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봐야겠다) 민간 차원에서 들어가는 비용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간단한 물건 하나를 판매하려 해도 영어와 불어가 모두 포장에 들어가야 한다) 한 가지 언어를 깊이 있게 배우는 것도 중요하고 힘든 일인데 불어와 영어가 섞여 있는 교육제도가 과연 얼마나 효율적일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나는, 온갖 언어가 섞여 사용되는 이 도시가 마냥 재미있다. 점차 이중언어, 삼중언어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몬트리올은 거대한 실험실과도 같다. 어쩌면 이 삼중언어 도시가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 지켜보는 즐거움으로 그동안 힘들게 불어를 배운 보람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성(姓)이 없는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