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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Mar 21. 2024

캐나다 백수 첫 2주의 기록

아주 이상한 날이었다. 4년에 한 번 있는 2월 29일, 월 마감을 해야 하는 날이고 일주일 중 가장 바쁜 목요일이었다. 그런데 나타나지 않은 환자 대신에, 아니, 덕분에 몇 달이나 미뤄온 내 이를 치료했다. 바깥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 이는 다행히 크라운을 씌우지 않고도 해결이 되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몇 가지 서류 작업을 하고 닥터들을 위한 처방전을 준비해서 프린트해두었다. 간단하지만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내 동료들이 꺼리는 일들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려는 참에 원장실에 불려 들어갔다. 원장님은 안절부절못하며 "This is bad"를 연발했다. 가장 오래 일하던 닥터가 나간다고 했다. 클리닉이 좋지 않은 상황인 건 알고 있었다. 무리해서 확장을 했는데 손님은 줄었다. 캐나다 정부에서는 65세 이상 모든 이에게 치과 진료비를 100% 지급하겠다고 홍보했지만 정작 그 방법이나 비용은 각 클리닉에 부담이 되고 있었고 그나마 일처리가 더디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내가 나가야 하는 거구나' 바로 깨달았고 호기심 많고 철없는 나는 그 순간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한국에서 10년, 캐나다에서 이리저리 합해서 십여 년, 20년을 훌쩍 넘는 직장생활 후에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첫 번째 기회였다. 여행을 다니고 글을 써야 하는데 내게 과연 그만한 시간이 있을까, 나이만 점점 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고민하던 날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날 처방전을 준비하면서 한 명의 닥터의 것은 왜 안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만두게 된 그 닥터 것이었다. 물론 그때는 몰랐다. 이미 준비된 파일에 이름만 바꿔서 출력하면 되는데 그냥 내키지가 않았다. 내 자신에게 왜 그 사람 건 뺐냐고 묻는다면 도무지 대답할 말이 없다. 그 무렵엔 사람의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내게 자꾸 일어나는 중이었다. 그날 나는 사무실 열쇠를 반납하고, 서랍에 들어있던 개인소지품을 챙겨서 동료들의 충격받은 얼굴을 하나씩 안아주고 3년 8개월 일한 직장에서의 마지막 퇴근을 했다.


실업급여에 관한 오해와 진실


처음 며칠은 장래계획으로 꿈에 부풀었다가 허전했다가 슬그머니 걱정도 되는 날들이었다. 첫 주말에는 전에 써뒀던 글을 손봐서 브런치에 올리기도 하고, 쓰고 싶은 책의 목차를 정리하기도 했다. 남들이 출근을 하는 월요일이 오고 화요일이 오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실업급여며 세금보고에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결국 모든 것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에 익숙한 친구들에게도 자문을 구해봤지만 가장 정확한 내용은 캐나다 정부 콜센터에 전화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를 얼마 동안 받을 수 있나?

지난 52주 동안 급여 중에 가장 많이 받은 22주(주에 따라 다름, 그 주의 실업률에 의해 결정) 금액을 기준으로 55% 지급된다. 기간은 14주에서 45주까지인데 지난 52주 동안 몇 시간을 일을 했는지에 다르고 1800 시간 이상 일했다면 최대 기간은 거주하는 주의 실업률에 따라 결정된다.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해외여행을 할 수 있나?

간단한 대답은 Yes다. 단, 가기 전에 미리 보고를 해야 하고 와서도 예정과 다른 날짜였다면 알려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사회복지 혜택(welfare)과 혼돈하기 때문이다. 실업급여는 다만 외국에 있는 동안 급여가 일시중지될 뿐 불이익은 없다. 다만, 출발하거나 도착하는 날짜가 주중이어서 단 하루라도 페이를 받는 날이 있으면 그 주는 지급기간에서 제외된다. 나가는지 어쩌는지 그쪽에서 어떻게 아냐고? 안다. 캐나다 정부가 한 가지 잘하는 게 있다면 바로 기관 간의 연계다. 캐나다 국경에서 바로 보고가 들어간다.

예외는 있다. 가족 중의 누가 위중하다거나 해서 나가는 경우 일주일까지, 직업을 구하느라 간다면 이주일까지 페이가 나온다. 


그동안 공부는 할 수 있을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일주일에 몇 시간의 시간을 투자하는지 (수업시간 + 공부시간), 중간에 취업을 하면 그만둘 수는 있는지, 그럴 의향은 있는지를 먼저 확인한다. 그런데 캐나다 정부에서 인정하는 클래스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다. 지난 10년 중에 7년 이상 납부한 고용보험 금액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풀타임으로 들어도 인정이 된단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나?

2주 단위 보고서에 얼마를 받았는지 기재해야 한다. 그 금액의 50%는 제하고 실업급여를 받는다..라고 하면 간단할 텐데 1달러 당 50센트를 제하고 받는다고 되어있다. 그전 기간의 90%는 넘을 수 없단다. 


결론, 복잡하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꽤나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물론 위에 적은 내용도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지금은 정확하다 하더라도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며칠이 지나자 전화가 왔다. 서스캐처원 번호가 뜨길래 스팸인 줄 알고 안 받았더니 바로 이메일이 왔다. 24시간 내에 그 번호로 전화하지 않으면 신청이 취소된단다. 그래서 전화로 몇 가지 확인을 해주고 우편으로는 네 자리 숫자의 비밀번호를 받았다. 내 Employment Insurance 계정에 접속해서 앞으로 두 주에 한 번씩 보고할 때 사용될 코드였다. 나중에 감사가 들어올 경우에 대비해 스프레드시트로 구직활동 내역을 써넣을 파일도 만들어 두었다. 요즘 업계가 불황인지 내 직업군은 자리가 많지 않았다. 그렇게 2주가 지났다.


긴 2주였다. 연말이나 여름에 쉬는 2주는 늘 짧더니 실직자의 첫 2주는 꽤나 길었다. 그 사이 극장엔 두 번을 갔고 장을 보러 가는 것 외의 외출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보험료를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자동차보험 회사에 전화했더니 다음 보험료는 일 년에 877달러에서 약 800달러 정도로 내려갈 거라고 했다) 영어책은 몇 페이지를 못 넘기고 잠이 들었지만 리디북스에서 사들이는 책들은 밤이 깊도록 읽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었다. 어느 날은 옆으로 기대 누워 종일 여행정보를 찾아보고 유튜브에 파묻혀 있었더니 목과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금세 허리에 살이 붙었다. 나는 화장대로 쓰고 있던 책상을 정리하고 무선 키보드와 마우스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한 가지 결심을 했다. '해야 하는 일'을 하루에 한 가지만 할 것. 그러자 조바심이 사라지고 나 자신의 게으름을 문책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것이 온 가족 세금보고일 수도 있고, 전구를 사다 갈아 끼우는 일일 수도 있다. 수영을 하러 가는 것은 좋아하지만 일단은 귀찮은 일이므로 '해야 하는 일'로 쳐주자.


나의 슬기로운 백수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과연 앞으로 또 다른 2주, 2개월, 다음 해는 어떤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는 일이 얼마나 되던가. 지난 30년이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살아온 세월이었다면 내게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에 집중을 할 기회가 생겼으니 일단은, 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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