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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Jul 23. 2024

조지아주 버블티 가게 사건

    요즘이야 미주로 이민오는 분들은 한국에서 어느 정도 영어교육을 받아서 그런 일이 없지만 이민 온 지 오래된 60-70대 분들만 해도 말이 안 통하는 외국땅에서 일만 하며 살던 분이 많았다. 오로지 자식을 위해 희생한 세대의 끝자락이다. 하지만 그분들 자녀노릇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기대에 부응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의대면 더 좋고) 통역을 위해 어릴 때부터 오만가지 상황에 불려 가 부모의 보호자 노릇까지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학생의 부모가 진상학부모일 확률이 높은 것처럼, 진상 손님의 딸이 통역한다고 나타나 쌍으로 어처구니없는 짓을 한 사건이 어제 한 유튜브 비디오로 세상에 까발려졌다.


    2022년, 미국 조지아 주에 살고 있는 68세의 한국 남성이 보바(버블티) 가게에 들어가 마차드링크가 너무 쓰다며 불평했다. 매장의 젊은 한국여성 매니저가 새로 만들어주겠다고 했지만 '마셔보라'며 들고 있던 음료를 내밀었고, 이를 거부하자 '미친년'이라는 욕을 하며 음료수를 던지려는 시늉을 했던 것. 매장 직원들이 말렸고 그 과정에서 경찰이 출동했다. 이후 상황이 경찰의 바디캠에 녹화되어 이제 공개가 된 것이다.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경찰이 촬영한 내용이 유출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여간 이 부녀의 얼굴은 그대로 보여졌고 좁은 한인사회에서 신상까지 다 나와버렸다. 


    여기서 한국적인 정서가 미국의 법의식에 어떻게 충돌하는지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나이로 권위를 세우려고 했다. 매장 매니저가 나이가 더 들었거나, 남성이었거나, 아니면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이 남성의 태도는 좀 달랐을지 모르겠다. 경찰이 왔을 때 처음 한 말이 '내 나이가 68살인데 직원이 버릇없이 굴었다(rude)'는 것이었다. 


둘째, 먹던 음료를 마시라고 내미는 것은 넓은 의미의 폭력이다. 실제로 던지지 않았어도 그 제스처만으로도 법정에 불려 갈만한 폭력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세대의 어르신들에겐 그걸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술자리에서 잔 돌리기를 하던 세대였고 직접적인 접촉이 없어도 폭력으로 간주하는 걸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권위에 의한 폭력이 만연하던 시대를 살았던 분들이었다.


셋째, 자식은 보호자가 아니다. 적어도 사고는 부모가 쳐놓고 바쁜 자녀를 불려 다니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가족이랍시고 딸마저 아버지 편을 드는 바람에 이름과 학력, 직장까지 다 공개 돼버렸다. 버블티 한 잔에 자식 앞길까지 망친 셈이다. 이 생각 없는 딸은 심지어 법정 출두에 관해 경찰이 설명하려고 하니 "나는 의사라 법정이 뭘 하는 데인지는 안다"라고 잘라 말했다. 아마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결국 자기 무덤에 묘비까지 꽂았다.


넷째, 경찰에게까지 고래고래 큰소리쳐서 화를 돋웠다. 그것도 미국 경찰에게. 결정적으로 이 남성은 경찰이 "음료 하나로 어린애같이 굴지 말라"라고 나무라면서 "집에 가라 (Just leave)"고 가게 매니저에게는 환불해주라고 해서 훈방조치하려고 했는데 그 앞에서까지 여성매니저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면서 다가갔다.  


    경찰이 법정에 나가야 한다고 설명하자 이 남성의 질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왜 상대방은 안 나가는데 자기만 가야 하는지, 그리고 문제가 된 버블티는 '중요한 증거'인데 가져가지 않는지. 이건 정말 할 말이...


    조지아의 경찰은 친절했다. 버블티 하나로 일으킨 소동에 경찰까지 출동한 인력낭비에 화가 났을 법도 한데 정확하고도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연장자에게 Rude 하다는 것이 위법은 아닙니다. 음료를 맛없게 만들었다고 법에 저촉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음료를 던지려고 한 것은 위협이고 위법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말들,


"너는 에미애비도 없냐?"

"내 아들/딸이 의사/검사/변호사인데 말이야."

"왜 나만 갖고 그래?"

    

이런 의식이 미국의 법질서를 만나 보잘것없이 깨지는 상황이었던 것. 

해당 비디오는 유튜브에서 2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한국계를 포함한 많은 미국인들이 댓글을 달고 있다. 정작 봐야할 사람들이 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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