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순간은 오지 않는다

by 모스




돌아보면, 나는 꽤 오랫동안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무언가 일이 주어지면 “잘할 수 있을까?”보다 “못하면 어쩌지?”가 먼저 떠올랐다. 할 수 없는 이유를 찾는 일엔 재능이 있었고, 스스로를 설득해 회피하는 데에도 능숙했다. 사실 핑계를 대려고 하면 세상엔 언제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지금은 바빠서, 상황이 안 좋아서, 준비가 덜 돼서. 그런 이유들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그러던 내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 K를 만나고부터였다. 그는 늘 말없이 그냥 일단 해보는 사람이었다. 나는 언제나 조건을 따졌지만, 그는 방법을 찾았다. 나는 현실의 벽만을 보았고, 그는 벽은 언제나 당연히 있는 것이고 그 이상. 즉 언제나 그 벽을 넘을 방법을 고민했다. 그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나는 세상에 완벽한 조건이란 거의 없다는 걸 배웠다. 모든 상황은 늘 어딘가가 부족하고, 사람은 언제나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다. 결국 중요한 건 그 결핍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 결핍 속에서도 한 발 내딛을 수 있느냐였다.


그 뒤로 나는 조금씩 그와 닮아 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그런 능력들을 배우고 싶었다.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는 대신, 불완전한 채로라도 시작해 보았다. 그 결과가 언제나 이상적이지는 않았지만, 이상적인 결과라는 것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 겁 없이 무언가에 들이댈 수 있었다. “해야만 한다”는 압박 대신 “해볼 수 있다”는 가벼운 결심이 자리했다.


살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의 행동에도 관성이 있다고 말이다. 전에도 비슷한 문장을 브런치에서 썼지만 경험 상 핑계를 대는 사람은 계속해서 핑계를 대고, 해보는 사람은 계속해서 해본다. 그 차이는 결과뿐 아니라 사람의 방향을 바꿔놓는다. 결국 ‘되는 사람’이란, 처음부터 잘된 사람이 아니라 ‘안 되어도 해보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돌이켜보면, 내가 성장할 수 있었던 순간들엔 늘 그런 태도가 있었다. 상황이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결핍 속에서도 일단 해봤기 때문이었다. 해보는 과정 속에서 실패를 겪고, 그 실패 속에서 무언가를 배웠다. 결국 해보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건 결과보다 변화된 자신이었다. 정확히는 마음가짐과 생각. 그리고 어떤 것에 대한 노하우정도가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완벽한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 그럼에도 계속해본다. 이유는 단순하다. 여전히 난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더 오를 수 있는 곳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닐까. 완벽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 불안한 마음을 안고도 걸어가는 것. 그 속에서 성장하고, 깨닫고, 다시 시도하는 것. 나는 오늘도 여전히 완벽한 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 스스로에게 그저 해보는 사람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사람으로 남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