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불던 첫 만남

향수의 향기보다, 목소리가 더 진하게 다가왔다

by 테일러

우리는 첫 만남에서 이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소개팅이라고 하기엔 조심스럽고,

데이트라고 하기엔 조금은 이른,

그 애매하고 설레는 사이.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차분한 말투와 안정감 있는 목소리로 나를 맞이했다.

대화를 주도하지 않으면서도,

잘 듣고 부드럽게 이어가는 사람.


가끔 말이 막히거나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이 있었지만,

그 공백조차도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그런 순간에 그 사람의 신중함이 느껴졌고,

생각보다 웃음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같이 먹은 뇨끼와 오일 파스타,

그리고 서로 나눠 먹으며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이야기들.


나도 모르게 자꾸 장난을 걸게 되는,

이상하게 편안한 분위기였다.


그는 전시회와 박물관을 좋아한다고 했다.

뉴욕에서 하루에 8시간을 박물관에 있었던 이야기,

함께 간 친구가 지칠 정도로 예술을 천천히 감상하는 습관.


그런 얘기를 들으며 나는,

‘이 사람과 전시를 함께 본다면

분명히 나도 조급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스타일, 식사 패턴, 주말의 루틴. 잠이 많다는 이야기,

운동은 한동안 못 하고 있었지만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말.


모두 다 아주 작은 조각들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았다.


아직 설렘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왠지 다시 만나면 더 깊이 알고 싶어질 것 같은 사람.

그리고 함께한 시간이 다시 떠오를 것 같은 사람.


조심스럽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사람을 몇 번이나 떠올렸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의 말투, 리듬, 그리고 미소가 조용히 떠오른다는 것.


아직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조심스럽게 그 사람을 향해 감정을 접어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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