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라이프# 코펜하겐의 플리마켓 - 옷
회사 동료 테런이(그녀의 키 180cm) 코미디언 장도연처럼 포즈를 잡더니 자신의 가죽재킷을 강조하며 물었다.
"이거 얼마 같아?"
레자(?)도 아닌 것 같고, 촉감도 좋고 빛깔도 아주 멋진 검은 가죽재킷이었다. 그 재킷 모델을 진품명품의 감정사들처럼 요리 뜯어보고 조리 뜯어보더니 사람들은 하나 둘 가격을 불렀다. 20만 원? 30만 원? 40만 원?
장도연, 아니 테런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아니, 이거 100 크로네(만 칠천 원 정도) 주고 샀어"
"말도 안돼!!!"
옷에 대해 막눈인 내가 봐도 이건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아연실색한 감정단은 대체 그 가격에 그런 물건을 어디서 구했는지 말하라고 들볶았고, 그녀는 veras vintage market이라는 플리마켓에서 발품을 팔아 구했다고 실토했다. 30만 원처럼 보이는 재킷을 만원대로 구했다면 그거야 말로 득템이 아닌가!
나는 플리마켓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크고 북적거리는 도시에 가면 주말마다 넓은 공터에 자신이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을 팔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플리마켓이 열린다. 물론 새 물건만큼 좋은 것은 없지만, 때론 사람의 손이 타 더 그 가치를 발하는 물건들도 있는 법이다. 빈티지 시계, 적당히 때 묻어 한 톤 진해진 나무 테이블, 고풍스러운 식기, 특이한 옷, 기념품 등 매력적인 것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늘 캐리어가 만석이라 많은 것들을 데려올 순 없었지만 플리마켓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여행 중 빼놓지 않는 코스다.
이렇게 별천지인 플리마켓이지만 옷은 잘 사지 않았었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사가고 보면 막상 입을 일도 별로 없고(너무 특이해서) 또 무료로 거저 준다고 해도 몸에 걸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펜하겐에 오고 나서 나는 이 플리마켓들에서 꽤 많은 옷들을 득템 했다. 가격이 저렴한 거야 당연한 거지만 전체적으로 깨끗하게 관리된 예쁜 옷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춥고 스산한 도시에 오면서 한겨울 옷을 거의 안 챙긴 탓에(늦가을, 겨울에 코펜하겐에 오시는 분들은 꼭 방한용품들을 꼼꼼히 챙기세요), 물가 비싼 덴마크에서 얼마 안 되는 월급을 옷값으로 전부 날릴 뻔했던(혹은 얼어 죽거나) 가벼운 지갑의 인턴은 이 마켓에서 구제되었다.
주말에 심심하면 한 번씩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를 돌곤 했던 마켓이다. Veras Market은 때에 따라 다른 장소에서 열리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면 verasvintage.dk에서 확인해보고 열리는 장소와 시간을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다(그렇지 않으면 찾기가 좀 힘들다). 날이 좋으면 야외에서, 추워지면 실내공간에서 열리는 이 주말 플리마켓에는 작고 귀여운 커피차와 푸드트럭, 때로는 작은 공연도 함께해 굳이 옷을 사지 않더라도 한 번쯤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이 마켓에서 판매자들을 보면, 그들에게는 이윤보다 처분한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있는 듯 보인다. 때문에 정말 말도 안 되게 깎는 것 아니고서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현금이 조금 모자란다거나 하는 제스처를 취하면 약간의 할인을 더 받을 수 있다. 역시 쇼핑할 때의 밀당의 기술은 만국 공통인가 보다.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엄마와 딸이, 애인끼리, 친구들끼리 안 입는 옷들을 잔뜩 들고 나와 옷장 청소를 하는 동시에 즐겁게 돈도 벌어 좋고, 소비자들은 내가 필요했던 물건들을 저렴하게 구매해 좋다. 창업자인 Veras의 말처럼 플리마켓에서의 쇼핑은 필요 없는 물건들을 재활용하는 현명한 소비로 지구도 구하고 내 빈약한 지갑도 구하는 일석 이조의 효과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