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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한량 Dec 29. 2018

한국인이라 다행인, 해외의 의료 서비스

덴마크 라이프#  미국, 덴마크에서의 병원기록





해외에서 살다 보면 가끔 힘에 부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전산처리, 병원, 집 계약, 보험가입, 면허등록, 은행업무 등을 맞닥뜨릴 때 유독 모국이 그리워진다. 덴마크에서 나는 한국에서 사는 게 얼마나 편한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모국어를 쓰고 가족, 친구들로부터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한국에서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편리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의료제도 때문이다. 없던 나라사랑샘솟게 하는 이웃나라 미국과 덴마크의 의료제도를 한 번 알아보자. 



photo credit: unsplash.com @rawpixel



미국



미국에서의 의료제도를 먼저 보자면, 우선 병원에 한 번 갈 때마다 등골이 휜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들리는 지인들의 병원 방문기들을 듣다 보면 공원과 도시에서 매일같이 운동하는 뉴요커들의 웰빙 생활양식이 실은 병원비를 지출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아래는 병원에서 등골이 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환자 1. 감기몸살로 앓아누웠던 친구가 어느 날 진료 명목으로 의사를 딱 한번 만나고 500불(60만 원 정도)의 청구서를 받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는 회사 보험에서 커버한 이후의 본인부담금이라고 한다. 그럼 애초에 얼마였다는 걸까. 아픈 것도 서러운데 이런 단순한 진료를 받는 데에 몇 십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면...? 감기는 나을 수 있을지언정 되려 마음의 병을 얻지 않을까 싶다. 


환자 2. 감기는 그나마 양반이다. 만성위염을 앓다가 병원을 찾은 친구는 의사와 10분 정도 만나 결국 '잘 먹고 푹 쉬라'는 얘기만 늘어놓고는 800불(100만 원)을 청구받았다고 했다. 청구서에 적힌 금액을 확인한 후 친구는 산부인과 진료를 바로 취소했다고 한다. 멋모르고 산부인과 진료까지 봤다면 자기는 아마 한 달 월급을 모두 병원비로 날려버렸을 거라면서 안도했다.    


환자 3. 한 친구는 교통사고가 나 길에서 의식을 잃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앰뷸런스를 불러줬는지 응급실에서 눈을 떴고, 온갖 검사들을 마친 뒤 입원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생명에 큰 지장이 없어 다행이라며 일단락되었지만, 한 달 후 날아온 청구서에 친구는 다시 한방을 먹었다. 앰뷸런스 비용 1000불에 그 외에 병원비까지 다 합치면 몇백만 원을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그 사건으로 우리는 미국에서는 응급상황이 오면 네 발로 기어 병원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반드시 앰뷸런스는 타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photo credit: unsplash.com @rawpixel



덴마크



덴마크의 의료제도는 더 심각하다. 사실 나는 덴마크의 '복지국가' 타이틀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의료항목은 빼야 한다는 의견이다. CPR(거주등록증)을 발급받고 세금을 내는 모든 사람들은 무료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의료혜택이라는 것이 사실상 껍데기뿐이라면? 

덴마크 사람들은 아프다고 해서 무작정 병원에 가지 않고 따뜻한 차를 마시고, 음식을 챙겨 먹으며 잘 쉬는 방법을 택한다는 말을 들었다. 조금만 아파도 바로바로 병원이나 약국에 찾아가서 뭐라도 치료를 받고 약을 타 먹던 나로서는 의아했지만, 몇몇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왜 덴마크 사람들이 병원에 잘 가지 않는지 이해했다.    



환자 1. 아파서 다 죽어가던 룸메에게 병원에 가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으며 답하기를, "그 사람들이라고 딱히 해주는 건 없어. 그냥 잘 쉬라는 잔소리나 좀 듣고 오는 게 다일껄" 하는 것이었다. 친구는 자신의 홈닥터(덴마크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받으면 나에게 일차적 진료를 해주는 홈닥터가 배정된다)를 무능력하고 까칠한 늙은이라고 툴툴댔다. 단 한 번도 좋은 서비스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병원문턱 한 번 밟지 않고 일주일을 꼬박 앓으며 보냈다. 


환자 2. 한 친구는 멀쩡하게 잘 끼던 렌즈가 갑자기 너무 따갑고 아파서 안과의사를 찾아갔다. 매일 렌즈를 끼던 사람이 갑자기 렌즈를 못쓰고 안경을 쓰게 되니 답답하기도 하고 눈에 뭔가 문제가 생겼나 싶어서였다. 엄청난 예약 스케줄 속에서 간신히 빈자리를 찾아 2주 만에 의사를 만났는데, 진단 결과가 뭐냐는 내 물음에 친구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의사는 자기 렌즈와 안경을 한 번 보고, 눈도 한 번 들여다보더니, "글쎄... 왜 렌즈가 따가운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눈을 푹 쉬게 해 주세요" 정도의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하더니 안경을 깨끗하게 닦아주고는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환자 3. 면역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수두에 걸린 친구가 병원에 갔다. 열이 40도에 육박하는데도 의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더니 심각해 보이지 않아서 만날 수 없다고 했단다. 너무 아파 울면서 소리를 지르는데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응급실에 들어가려고 해도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해야 입원할 수 있다고 한다. 응급이라는 게 그야말로 이머전시(Emergency)인데 며칠 전 혹은 큰일이 터지기 전부터 미리 전화예약을 하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국 친구는 그 예약이라는 것을 하고 4일 만에 의사와 만나는 데 성공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수두인데 괜찮으니까 그냥 쉬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친구는 이제 덴마크 얘기만 나와도 이를 간다. 아플 때 서럽게 만들면 이렇게 오만정이 다 떨어진다. 

 



가장 중요한 건강  / photo credit: unsplash.com  @esdesignisms




해외에서 형편없는 혹은 터무니없이 비싼 의료서비스 얘기를 듣고 나면 나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덴마크는 의료인프라가 부족해 사실상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의료서비스를 가지고 있고, 미국은 서비스는 좋지만 공공보험이 아닌 사보험 형태로 되어있어 엄청난 청구서를 받거나 혹은 높은 보험료를 매달 지불해야 하는, '돈 없는 사람은 아프면 안 되는'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제일 좋은 건 아프지 않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겠지만, 사람일이라는 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탄탄한 의료보장제도는 참 든든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겨울, 한국에서 4000원 정도의 진료비로 코와 목도 깨끗하게 청소하고 호흡기 치료도 해주는, 가끔 목에 걸린 생선 가시도 무료로 제거해주시는 단골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께 평소보다 두배로 더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프지 않기를.  






*해외에서 의료서비스로 고생했던 적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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