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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한량 Jan 04. 2019

덴마크인들의 양성평등

덴마크 라이프# 스칸디나비아 국가 남녀의 성역할과 평등의식





덴마크에서의 남녀 성역할과 성평등에 대한 개념은 우리가 가진 그것과 상당히 다르다. 덴마크에서는 남자가 해야만 하는 일과 여자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한 고정관념이 거의 없다고 한다(굳이 따지자면 출산 정도?). 처음엔 이를 모르고 가서 당황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장 난 집 현관문을 '자립심을 키운다는' 이유로 어떻게든 혼자 열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고 도와주지 않던 룸메, 파티 준비 중 무거운 박스들을 수차례 나르던 여직원들 뒤로 우아하게 초에 불을 붙이고 샴페인 잔을 세팅하고 있던 남직원들, 장을 봐서 친구 집으로 이동하던 길 여자 친구들 손에만 양손 두둑이 들려있던 맥주와 칠면조에 가까운 닭 세 마리. 



photo credit: visitdenmark.com



처음에는 냉정하다고 생각했지만, 따지고 보면 나에게 무거운 건 남자들에게도 무거울 테니 내가 좀 더 든다고 억울할 일도 아니고, 뭐든 자신의 힘으로 해내는 게 좋으니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기 전에 스스로 시도해 보는 편이 낫다. 이곳에 살면서 남자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는 자립심을 조금 얻은 것 같기도 하다. 

     

역으로 덴마크 여자에게 잘 보이려 매너 있게 문을 열어주고 가방을 들어주려다가 그 여자의 무시당한 듯 기분 나빠하는 표정을 보고 당황했다는 남자의 이야기를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아마 덴마크 여자들에게 신데렐라 같은 여주인공이 백마 탄 남자 주인공과 만나는 우리나라의 여성 판타지적 드라마를 보여준다면, 도대체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할지도 모른다. 미국 출신 한 칼럼니스트는 '덴마크 여성과 데이트하는 법'이라는 글에서 남자들이 흔히 써먹는 여자 꼬시는 수법은 덴마크 여성 앞에서 넣어두라고 충고한다. 멋모르고 극진하게 온실 속 화초처럼 대했다간 냉랭한 결과를 맞이할 거라면서 말이다.          



photo credit: unsplash.com (@huuduong)



이렇게만 듣다 보면 덴마크가 여자가 살기에 불편한 나라인가 싶지만 전체적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남녀가 서로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50:50으로 아주 정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커플이나 부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데이트 비용과 결혼생활 시 들어가는 비용은 각자 반씩 부담하고, 가사노동도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아이의 양육도 반씩 분담하며 힘쓰는 일에도 여자들은 남자가 도와주길 바라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 한다고 한다. 이들은 앞서 언급했듯 남자가 해야 하는 부분과 여자가 해야 하는 부분의 경계가 흐리고 남녀보다는 서로를 인간 대 인간으로 보는 시각이 더 우세하다.   



북유럽의 국가들은 양성평등이라는 개념을 아주 오래전부터 확립시켜왔다.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지고 남성과 여성이 거의 비슷한 고용률로 수렴하는 것으로 시작해, 동등한 임금을 받고 동률의 세금을 내면서 사회의 분위기는 급변했다.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나 남녀관계에서도, 남성은 여성을 자신들과 대등한 존재로 생각하고 여성 또한 자신이 약자로 취급될 소지가 있는 도움을 받는 것을 일체 원치 않는다. 이러한 변화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남성은 그들이 과거로부터 지녀온 상대적 특권의식을 내려놓고 여성은 남성의 그늘 아래서 보호받으며 살기를 거부한 것이다. 덴마크 사람들은 이처럼 오랜 세월 합의 끝에 남녀가 평등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들만의 기준점을 세우고 그것을 사회규범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photo credit: coffeemugshope.com



한국에서는 요즘 성별 논쟁과 남녀평등 이슈에 그야말로 불이 붙은 것 같다. 그 소용돌이의 파편에서 '김치녀'와 '한남충'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며 서로에게 무자비하게 돌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익명의 그 사람들은 양성평등을 논의하기 이전에 분노와 혐오가 뒤범벅된 오물에 가까운 말들로 그저 서로 상처 내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해야만 하는 것은, 잠시 화를 가라 앉히고 몇십 년 전의 북유럽 사회가 끌어낸 그 합의점을 찾기 위해 하나씩 하나씩 저울의 수평을 맞춰가는 일 아닐까.            



photocredit: unsplash.com




*덴마크의 남녀 성평등 현황을 그래픽으로 한눈에 볼 수 있는 웹사이트: Gender Equality in Denmark

https://www.dst.dk/en/Statistik/emner/levevilkaar/ligestilling/ligestillingsweb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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