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라이프# 당신의 자전거는 곧 모두의 자전거
생애 첫 자전거라며 삼 주간 잘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도둑맞았다. 외출을 하려는데 집 앞에 주차되어 있던 자전거가 사라진 것이다. 한 시간 가량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어느 곳에도 자전거는 없었다. 이렇게나 빨리? 이렇게나 어처구니없게? 이 곳에서 발이 되어주던 자전거의 유실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실 며칠 전 바퀴에 보라색 스프레이가 살짝 뿌려져 있어 이게 뭐지 했었는데, 그제야 알았다. 누군가가 훔쳐갈 물건을 미리 점찍어 놓고 갔다는 것을.
코펜하겐은 안전하고 치안 좋은 나라라며! 이건 너무도 큰 배신이다. 중고자전거라 비싸게 주고 샀던 건 아니었지만 피코라고 이름도 붙여줘 가며 반려동물처럼 애착을 가졌던지라 마음이 더 아팠다.
다음날 점심시간,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모두들 자전거 도난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나는 코펜하겐에 삼년남짓 살면서 지금까지 세 대의 자전거를 잃어버렸어. 한 번은 누가 물에 던져놨더라고"
"나는 첫 해에 반년도 안돼서 두 번 연속으로 잃어버리고 자전거 근처에 덫을 설치할까 심각하게 고민했어"
"난 더 슬퍼. 통째로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자꾸 부품만 떼어가... 뒷바퀴, 핸들, 안장, 바구니와 벨까지. 전부 미트패킹 스트리트에서 벌어진 일이야"
외국인도 있지만 덴마크 현지인들도 자주 잃어버린다고 했다. 별 대수로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하는 걸 보니 그 빈도가 정말 높은 것 같았다. 그런데...
자전거를 잃은 자들의 처절한 대화를 듣던 인턴 동기 크리스찬(범죄자 실명 공개)이 한마디를 거들었는데, 아... 그 말은 넣어두는 편이 나았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 미트패킹 디스트릭트! 거기 나랑 내 친구들이 자전거 쇼핑하러 가는 곳인데! 어떤 날은 부품을 가지러 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자전거를 통째로 가져오기도 해!”
"!!?... 뭐라고?"
너였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물론 크리스찬이 피코를 훔친 건 아니었지만, 어찌 됐건 우리가 욕하던 도둑이 바로 앞에 앉아있었다니. 게다가 절도를 자전거 쇼핑이라고? 나는 밥을 먹다 말고 포크를 공격적으로 집어 들고 따졌다.
“네가 내 피코 훔쳐갔지! 너 같은 놈 때문에 여기 우리 같은 피해자가 생기는 거야 이 도둑놈아!”
"너 뚜벅이네. 내가 내일 미트패킹 스트릿에서 하나 갖다 줄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코펜하겐에서 굉장히 흔한 자전거 쇼핑의 한 방법이라며 뿌듯해하기까지 했다. 부주의하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주인들의 자전거를 자신이 얼마나 예술적으로 들고 튀는지 설명하는 저 뻔뻔한 낯짝을 보고 있자니 먹고 있던 빵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양심은 대체 어디에 팔아먹은 거냐.
코펜하겐에서는 하루 평균 200대의 자전거 도난사고가 일어난다고 한다. 아무리 자전거가 많다고는 해도 인구수를 생각해 봤을 때 꽤 많은 수의 도둑들이 그야말로 열일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조심해야 할 장소들은 (도둑 피셜) 자전거가 떼거지로 모여있는 역 근처의 주차장이나 미트패킹 스트리트라 한다.
자물쇠를 잘 잠그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은 가능한 움직일 수 없는 시설물과 함께 묶어두거나, 두꺼워서 끊을 수 없는 체인을 감거나 두 개의 자물쇠를 양쪽 바퀴에 하나씩 거는 방법을 가장 많이 추천했다. 또 조명과 벨은 가장 빈번히 도난당하는 부품들이라 주차 시 꼭 분리해서 가지고 있으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구매하기 전 고유번호를 체크해 도난당한 물건인지 확인하고, 구매 후에는 덴마트 자전거 등록 사이트에 들어가 자전거의 정보를 등록한다. 도난당했을 시에는 덴마크 경찰청 사이트에 들어가 리포트한다(*신고 사이트 주소: www.politi.dk). 회수율이 높은 편은 아니라고 하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고하는 것이다.
한바탕 소동 이후 자전거 상점을 들어갔는데, 나처럼 도난을 당해 두 번째 자전거를 사러 왔다는 프랑스인과 덴마크인이 내 손에 들려있는 가녀린 한 줄짜리 자물쇠를 보고는 내게 충고했다. 그런 간단한 자물쇠 하나를 걸어놓는 건 여기서 '이 자전거를 가져가십시오' 바치는 꼴이라고 말이다. 아차, 나는 한 차례의 실패 후에도 배우는 게 없구나. 그리하여 그들의 충고대로 3kg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체인 자물쇠를 두 번째 자전거 브라우니에게 걸어주며 다짐했다. 다시는 널 잃어버리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코펜하겐에서 사시는 분들, 자전거 도둑 조심하세요.